도서 소개
작고 보잘것없는 자투리 헝겊이 조화를 이루어 마음까지 감싸주는 조각이불이 되는 것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감사와 사랑과 희망으로 엮어 수필로 짜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이웃, 친구, 딸이자 엄마로서의 삶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펼쳐진다.
출판사 리뷰
사는 행위가 별것 아니다
인생의 모래시계가 멈추는 날까지 먹는 것이다
매일 밥을 먹듯 누군가의 사랑을 먹고 기도를 먹고 용서를 먹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색깔, 다양한 무늬, 조금씩 다른 촉감의 자투리 천들이 조화를 이루어 예술적 감성을 품은 조각이불이 된다. 존재감을 잃어버린 작고 보잘것없는 자투리 헝겊이 모여 버려질 위기를 극복하고 누군가의 추위를 덮어주고 외로운 이의 마음까지 감싸주는 소중한 이불이 된 것이다.
이정혜 작가도 버려질 뻔한 소소하고 하찮은 이야기라는 날줄에 감사와 사랑과 희망이라는 씨줄로 수필이란 베를 짰다. 쓸모없는 자투리 조각들이 모여 조각이불이 되듯이, 각기 다른 주제의 조각들로 정성을 다해 빚었다.
작가는 일용할 걱정거리만 있기를 기도할 정도로 별의별 남 걱정을 다 하는 사람이다. 그런 성격 탓일까, 주변 모든 크고 작은 존재에 관심을 기울인다. 난전 위 노부부의 식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체리 한 통에 다시 출근할 힘을 얻는다. 감나무꼭대기에 달린 까치밥을 지키고 꽃을 사올 때는 이름을 꼭 알아온다.
오직 집이 목표라는 택배 아저씨, 살기 위해 걷는다는 택시 기사, 겨울비 속 탁발승의 뒷모습, 할머니와 함께 소쿠리를 갖가지 채소로 채웠던 어린 시절의 해거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손자와 먼 인생길에서 유턴하듯 점점 느려지는 아버지… 산다는 건 애환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 또 행복과 사랑이 있다. 『조각이불』은 바쁜 일상을 보내며 자주 잊게 되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마음이 문득 서늘해지는 날 펼쳐보면 좋을 책이다.
B는 절규하며 그 작은 주먹이 망가지도록 벽을 쳤다. 이쯤 되면 복도로 아이들이 몰려왔다. B는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악을 썼다.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B를 보통 아이와 조금 다를 뿐 문제아로 보지 않았다. 이 세상의 부모는 다 그럴 것이다. 대부분 자녀를 문제아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B의 부모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잠시 문제가 있어 보여도 자라면서 극복되기도 하며 모범생이 돌변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예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아버지도 고등학교에 근무하며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귀한 아들에게 문제아라는 가혹한 딱지를 붙일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B는 수업 시간이면 수업 내용 자체를 부정하며 큰 소리를 질러대서 다른 아이들이 제대로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행히 그 반 학부모의 인심이 좋은지 아무도 B를 전학 보내야 한다는 민원은 들어오지 않아 고마웠다. 교장과 교감이 B를 관찰하느라 수시로 복도에 들락거려 본의 아니게 공개수업을 많이 했다. 그냥 눈높이를 낮춰 그 아이 말을 들어주고 사랑으로 품으면 좀 나아지려니 하고 희망을 가졌는데 갈수록 담임이 병이 난 이유가 이해되었다.
퇴근 시간이면 ‘오늘도 나름 열심히 했다’는 뿌듯함보다 자책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고통을 한번 즐겨보기로 마음을 다잡으며 산책길에 나섰다. 걸으며 생각했다. ‘그 아이는 왜 보통 아이들처럼 살지 못할까? 교사는 왜 그런 아이에게 도움이 안 될까? 교사 자격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온갖 생각이 밀려와 착잡했다. 그때 단골 과일 가게 앞을 지나고 있었다. 순간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빨간 열매가 내 눈에 꽂혔다. 그게 체리였다. 그 열매를 한 입 베어 물면 새 힘이 생길 것 같았다. 보석상자를 안고 오듯 체리 한 통을 사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집에 와서 체리 몇 알을 먹고 나니 살 기운이 났다. 체리의 붉은 과즙에 꼭 링거를 맞은 듯 기운이 났다. 그 후 퇴근길에 수시로 체리를 샀다. 행복을 사는 마음으로. 나에게 체리 한 통의 의미는 애주가의 술 한 병, 흡연자의 담배 한 갑과도 같았을 것이다. 체리 한 줌을 먹는 시간은 참 행복했다.
- ‘인연’ 중에서
옛날 중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은 수시로 우리들에게 물었다.
“너거들은 살기 위해 먹나? 아니면 먹기 위해 사나?”
그때 우리들은 ‘먹기 위해 산다’고 하면 식충이로 취급받을까 봐 좀 고상한 척‘살기 위해 먹는다’고 소리를 높였다. 나는 살기 위해 걸을까? 걷기 위해 살까? 어느 게 고상한지 모르겠다. 집 근처에 택시 승강장이 있는데 손님을 기다리면서 기사 아저씨들은 모여서 여담을 나누기도 하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기도 한다.
대부분 칠팔십 대의 고령으로 보인다. 그중 유일하게 한 기사 아저씨는 매일 걷고 있다.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니 멀리는 갈 수 없고 개미 쳇바퀴 돌듯 매일 그 주위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한번은 내가 말을 건넸다.
“아저씨, 매일 걷던데 진짜 부지런하시네요.”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예, 살기 위해서 걷습니다.”
걷는 자만이 산다는 숲속 나무판의 글귀가 마음속에 윙윙 울렸다.
- ‘걷는 자만이 산다’ 중에서
얼마 전 경주 여행 중 갑자기 비가 왔다. 빗방울이 굵어졌고 우리에겐 우산이 없었다. “어쩌지?” 아이는 하늘을 힐끔 올려다보며 걱정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나는 서둘러 아이를 업었다. 업는다고 비를 피할 순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등에 업히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리는 비를 즐기는 표정이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콧노래까지 불렀다.
“엄마, 원우 내려놔요. 얼마나 무거운데.”
딸이 뒤따라오며 몇 번이고 채근했지만 나도 손주도 못 들은 척하며 빗속을 걸어갔다.
‘손주가 아닌 18킬로그램의 짐을 내가 등에 지고 간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쁨으로 지기는커녕 얼마 못 가서 고꾸라졌을 것이다. 사랑으로 지는 짐은 가볍다. 오늘도 손주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18킬로그램의 사랑을 업고 간다.
- ‘사랑의 짐’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정혜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경북과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동화와 수필을 써 왔다.동화 「꽃잎 속의 아이」로 부산문화방송 신인문예상을 수상했으며, 제40회 아동문예 작품상(동화)을 받았다. 《한맥문학》 수필 부문에 당선되며 수필가로도 작품 활동을 이어 왔다.동화집으로 『꽃잎 속의 아이』, 『달님을 닮은 꽃』, 『하얀 크레파스』가 있으며, 수필집으로 『햇살이 쌓이는 뜰』, 『쑥 한 줌의 시간』이 있다.상처받으면서도 또 사랑하기 위해, 오늘도 산책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삶의 작은 이야기들을 만나고 있다.
목차
서문_ 조각이불처럼
1부 자리를 빛내주십시오
사색의 뜰
고향의 봄
길 위의 식탁
나를 잃다
가훈
때가 되면
사랑의 매
인연
애환
오직 집이 목표
자리를 빛내주십시오
해거리
기다려!
2부 인생의 모래시계
성공이란 무엇인가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
수단껏
날파리의 입장에서
걷는 자만이 산다
내 인생의 부사
이순
시험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행복의 기준
사랑의 짐
인생의 모래시계
유언
3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아버지의 유턴
살아가는 일에서 사랑을 빼면
손 편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영혼이 담긴 눈맞춤
삶과 음악
꽃 수필
별맛
동전의 힘
하필이면
선물
이삿날
4부 행복을 여는 열쇠
해거름
행복을 여는 열쇠
사슴섬 이야기
마지막 소원 들어주기
나를 버리십시오
겨울비 속의 탁발승
일용할 걱정거리
살아야 할 이유
1그램의 용기
카르페디엠
기도
은총
까치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