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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한때는 꿈 많은 어린 소녀였다
지식과감성# | 부모님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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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이 책은 힘든 시간을 지나온 기록이자 눌려 있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애씀의 과정이다. 2005년 ‘시로 등단했으나 오랫동안 시 쓰기를 멈췄던’ 작가가 2023년 『전원생활』 수기 입상, 『월간문학』 수필 등단 3년 만에 첫 수필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살다 보면 갑작스러운 급류에 휩쓸리거나 길이 없을 것 같은 벼랑 앞에 서기도 한다. 그런 한때에 바탕한 작가의 첫 수필집에는 사람과 자연, 생명과 관계, 상실과 견딤을 지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발견하는 사유를 담은 44편의 작품을 묶었다.

  출판사 리뷰

한 권의 수필집은 대개 한 사람의 시간을 담는다. 하지만 이 책은 시간을 넘어 ‘삶’이 어떻게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다시 사람을 향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낸 시간들을 차분히 펼쳐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와 함께 동행하는 벗처럼, 곁에 머물러 준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돌아보기’는 자신과 가족을 넘어 식물과 동물, 이웃에게 향해 산과 개울, 밭 가에 있는 작은 웅덩이, 곧 철거될 마을의 빈 골목에 닿는다. 그래서 책에는 쇠뜨기, 호밀, 청보리, 느티나무가 푸르고 가재, 뱀, 고라니, 멧돼지가 지나가고 신산한 삶을 살아온 늙은 여인과 허리 굽은 농부의 애틋한 뒷모습이 아로새겨져 있다.

제1부 「저 단단한, 꽃들」에서는 삶을 견디며 자신의 자리에서 피어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강인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제2부 「달이 뜬다」는 농사와 자연을 소재로 생명의 가치와 환경, 인간의 삶을 성찰한다. 제3부 「모두가 하나이고 하나가 모두이니」에서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통찰을 전한다. 제4부 「별이 떨어져 벼랑에 걸리듯」은 잠시 세상에 머물다 간 작은 존재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기억하고, 마지막으로 제5부 「분갈이의 시간」은 오랜 견딤 끝에 비로소 자신을 보듬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회복의 시간을 담아낸다.

주제별로 구분되어 있지만 작가의 작품들은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사람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세상으로, 세상에서 또다시 사람으로. 작가의 시선은 따뜻함 속에 묵직함을 지녔으며,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래서 이 책은 상처를 품고도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필집이다.

소중했던 과거가 부정당하는 건 아팠다. 엄마는 창피하다며 꼬박꼬박 놀러 가던 마을회관을 가지 않았다. 보행기를 밀며 바깥마당을 돌고 또 돌았다. 두 손에 염주를 들고 문기둥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속죄의 불경을 외웠다. 누구도 엄마의 기여에 대해 묻지 않았다. 수백 쪽에 달하는 서류 속 어디에도 엄마의 목소리는 없었다. 엄마는 밀려났고 접혀 있었다.

할매는 매일매일 개울로 내려가 물을 떠 날랐다. 보는 이들마다 이번 고추 농사는 끝났다 했지만 할매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둑한 새벽부터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할매의 정성을 알았을까. 고추 모들은 뿌리를 내리고 힘을 받아 아우성치듯 자라났다. 가을이 오자 할매는 두툼하고 빨간 고추를 따서 이것 봐라, 하듯 길옆 양지에 널어놓고 말렸다. 고추들은 붉은 해를 품고 바삭바삭 부각 소리를 냈다.

착, 착, 착. 비탈에 허리를 굽히고 낫을 뉘여 풀을 베고 있노라면 이렇게 엎드려 평생 낫질을 한 아버지가 어느 결에 곁에 가까이 있었다. 고된 노동의 한평생을 보낸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저벅저벅 시간의 강물을 걸어 내려왔다. 끈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았던 이 땅의 농부들이 내가 쥔 낫을 함께 움켜잡고 있었다. 내가 그들이 되었고 그들이 내 안에 있었다. 어느 왕좌의 홀보다도 귀한 홀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현미
경기 광주 출생.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글을 쓴다.2005년 『시로 여는 세상』 시 등단. 2023년 『전원생활』 수기 입상(우수작), 『월간문학』 수필 등단. 2023년,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문학 창작산실 발표 지원 수필 부문 선정.함께 쓴 책 『맛, 그리움이 되다』, 『마지막엔 모두 벗을 것이다』, 『역사야, 뭐 하니?』, 『역사야, 어디 숨었니?』 등이 있음.• 한국문인협회,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원

  목차

작가의 말

1부 저 단단한, 꽃들
그녀의 이름
손등
엄마의 유산(遺産)
고래 낙하(落下)
키질 소리
백세시대(百歲時代)
바위 꽃
그녀도 한때는 꿈 많은 어린 소녀였다
토란

2부 달이 뜬다
낫의 시간
태풍이 온 날

가재가 있는 개울

풀 무덤
쇠뜨기

낮은 것들의 힘
나와 당신이 떠난 뒤에

3부 모두가 하나이고 하나가 모두이니
백 년의 집
우리는 이 별의 낯선
사장님, 사장님, 사장님!
봄 산을 싸릿대 같은 바람이 훑고
관(棺)
골목의 안부를 묻는다
나무가 위험하다
목숨
눈물길

4부 별이 떨어져 벼랑에 걸리듯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한 남자가 저수지로 들어갔다
눈이 온다
죽은 자의 길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흐린 날, 양화진에 갔다
겨울, 의령(宜寧)

5부 분갈이의 시간

마중

웅덩이

늙은 개
말의 무게
산에 닿다
뿌리의 힘

발표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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