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가족을 죽이고, 가족을 버리고, 몇 년째 왕래 없이 남처럼 사는 가족. 뉴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우리는 놀란 척하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은 알고 있다. 한집에 산다고 해서, 피가 섞였다고 해서, 서로를 진짜로 잘 안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오히려 요즘 우리는 진짜 내 얘기를, 진짜 내 모습을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먼저 꺼낸다. 익명의 커뮤니티에서, sns에서…….
『가족극』은 이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인터넷에서 만난 네 사람가즈미, 리쓰코, 미노루, 요시에은 서로 이름도 얼굴도 사는 곳도 모른 채 ‘아빠’ ‘엄마’ ‘딸’ ‘아들’ 역할을 맡아 메일과 채팅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관계는, 놀랍게도 진짜 가족보다 더 편안했다. 성적이 떨어져 속상한 밤, 위로를 건넨 건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인터넷 너머의 ‘아버지 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역의 도코로다 료스케가 실제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조사실에 모인 세 사람은 서로의 진짜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그리고 자신들이 왜 그토록 이 가짜 가족에 매달렸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서 무너진다.
이 책에는 미야베 미유키 세계를 잇는 또 하나의 미스터리적 요소가 있다. 『모방범』 의 다케가미 에쓰로 형사와 『크로스파이어』의 이시즈 치카코 형사가 이 작품 안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이다. 이들은 살인 사건을 함께 추적하며 미야베 미유키 작품 세계를 따라온 독자에게 뜻밖의 반가운 ‘재회’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들이 쫓는 것은 살인범만이 아니다. 이들이 진짜로 파헤치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진 위태로운 정의다. 『모방범』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가 2011년 한국 독자에게 처음 던졌던 이 질문은, 가족 간 강력범죄와 고립사 뉴스가 낯설지 않은 지금 더 아프게 되돌아온다. 당신의 가족은, 정말 당신을 알고 있는가.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할 말이 없고, 한집에 살아도 각자 방문을 닫고 각자의 화면을 들여다본다. 정작 마음을 터놓는 상대는 SNS 너머, 커뮤니티 너머,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존재일 때가 많다. 『가족극』의 네 사람가즈미, 리쓰코, 미노루, 요시에은 이 아이러니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만나 각자 ‘딸’ ‘엄마’ ‘아들’ ‘아빠의 연인’ 역할을 맡아 가상의 가족을 연기했고, 그 관계는 실제 가족보다 더 끈끈해 보였다. 그러나 ‘아빠’ 역의 도코로다 료스케가 살해되면서, 이 안전했던 무대는 순식간에 붕괴한다.
"저희는 도코로다 씨와 진짜 가족이 된 게 아닙니다. 그저 연극을 했을 뿐이에요."
한국에서 15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당시에는 새로운 기술이었던 인터넷의 ‘가상 가족’이라는 설정은 시대의 변화를 비껴갈 수 없지만, 현실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관계와 소속감을 만들어내는 모습, 그리고 그 관계가 현실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오히려 오늘날 더욱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혈연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완성된다면, 그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15년 만에 『가족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 이 소설이 오늘의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모방범』에 등장했던 형사 다케가미 에쓰로와 『크로스파이어』의 이시즈 치카코가 이 낯선 사건을 함께 파고든다. 용의자들은 서로의 본명도, 얼굴도 몰랐던 사이. 다케가미는 심문 과정에서 이들이 왜 얼굴 없는 관계에 그토록 몰입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부터 현실의 삶을 잠식했는지를 하나씩 짚어나간다.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치밀한 심리 묘사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성적이 떨어졌어요. 난 정말 노력했다고 믿었는데 채점된 시험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 아버지는 열심히 하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했지만 그거 거짓말 아니에요?”
“가즈미가 이번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건 아버지도 잘 안단다. (…)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남과 비교한 결과만 따지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단다.” (프롤로그)
“나하고 엄마한테 불만이 있었던 것 아니겠어요? 불만은 우리도 있지만. 생판 모르는 남하고 가족놀이를 하면서 우리한테서 도망쳤던 거야. 난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묻고 싶어. 어째서 아버지를 죽였는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어서 죽이고 싶었는지.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알 권리가 있겠죠?”
“우리는 다들 외로워. 현실 생활 속에서는 그 누구도 도저히 진정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진정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독한 거야. 마음을 이어줄 끈이 필요해.”
“나는, 무엇보다, 그런 사고방식이, 제일, 싫어. 뭐가 '진정한 나'야? 나는 그런 걸 바라고 인터넷에서 논 게 아니야.”
작가 소개
지은이 : 미야베 미유키
1960년 일본 도쿄, 후카가와에서 태어났다. 스물세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이 년 동안 고단샤 페이머스 스쿨 엔터테인먼트 소설 교실에서 수학했다. 1987년에 올 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은 단편《우리 이웃의 범죄》로 데뷔했다. 그 후《마술은 속삭인다》(1989)로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용은 잠들다》(1991)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화차》(1993)로 제6회 야마모토슈고로상, 《가모우 저택 사건》(1997)으로 일본 SF대상을, 《이유》(1999)로 나오키상, 《모방범》(2001)으로 마이니치 출판대상 특별상, 《이름 없는 독》(2006)으로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실 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로 군림한다.어렸을 때부터 시대 소설과 대하드라마를 좋아했던 아버지 덕에 많은 작품을 접하고, 시대물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에도에 사는 사람들의 인정을 그려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한《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1991)를 시작으로, 초능력자가 등장하거나 괴담과 미스터리를 접목한 작품들, 또는 하급 관리 주인공이 괴이한 사건을 수사하는 시대 미스터리를 썼다. 저자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후카가와를 배경으로 한 작품과 더불어 봉건 사회를 사는 서민의 고통에 주목한 사회파 시대 미스터리《외딴집》(200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미스터리와 접목한 작품을 속속 발표해 기존 시대 소설 독자뿐 아니라 시대 소설을 읽기 어려워하는 독자들까지 동시에 사로잡았다.그 밖의 작품으로 《벚꽃 다시 벚꽃》《세상의 봄》 《안주》 《낙원》 《희망장》 등이 있고, 2012년 국내에서 영화화된 《화차》 외에도 《대답은 필요 없어》 《스나크 사냥》 《모방범》 《이유》《고구레 사진관》 《솔로몬의 위증》 등 다수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되었다.현재 하드보일드 작가 오사와 아리마사(大澤在昌), 미스터리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京極夏彦),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이렇게 세 사람의 성을 딴 사무실 '다이쿄쿠구大極宮'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고 있다.
목차
1-15 9-256
작가 후기 258-259
역자 후기 260-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