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유승영 시인의 시집 『미래가 태어나려면』이 걷는사람 시인선 160번으로 출간되었다. “너와 내가 바뀌고 나와 네가 바뀌면 미국에 갈 수 있다”는 표제작 속 문장처럼 시집은 지금의 자신을 다른 존재로 바꾸어 놓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손톱을 갈아 끼우듯, 옷을 갈아입듯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는 말은 희망이라기보다 오래 굳어진 생존의 습관에 가깝다. 시인은 그 습관이 시작된 자리를 되짚는다.
되짚는 자리는 언제나 ‘집이 아닌 집’이다. 부모가 돌아오지 않는 밤 “깨진 항아리” 같던 방, “다시 태어나길 기다리는 우리들”이 몸을 포개고 잠들던 다락방, 옥수숫가루로 겨울을 나던 보육 시설. 이러한 공간들은 시집 곳곳에서 반복해서 돌아오며 화자를 지금도 그 자리에 붙들어 놓은 채 다른 존재를 상상하게 만든 원점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려 낸다.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시인선 160
유승영 시집 『미래가 태어나려면』 출간
“거꾸로 된 세상에서 뭐든지 바꿀 수 있어
감쪽같이 살아남은 우리들이 있잖아”
과거의 집을 던져 버린 자리에
비로소 도착한 미래의 문장들
유승영 시인의 시집 『미래가 태어나려면』이 걷는사람 시인선 160번으로 출간되었다. “너와 내가 바뀌고 나와 네가 바뀌면 미국에 갈 수 있다”는 표제작 속 문장처럼 시집은 지금의 자신을 다른 존재로 바꾸어 놓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손톱을 갈아 끼우듯, 옷을 갈아입듯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는 말은 희망이라기보다 오래 굳어진 생존의 습관에 가깝다. 시인은 그 습관이 시작된 자리를 되짚는다. 되짚는 자리는 언제나 ‘집이 아닌 집’이다. 부모가 돌아오지 않는 밤 “깨진 항아리” 같던 방, “다시 태어나길 기다리는 우리들”이 몸을 포개고 잠들던 다락방, 옥수숫가루로 겨울을 나던 보육 시설. 이러한 공간들은 시집 곳곳에서 반복해서 돌아오며 화자를 지금도 그 자리에 붙들어 놓은 채 다른 존재를 상상하게 만든 원점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려 낸다.
손이 굳은 이의 얼굴을 씻기며 “우리는 우리의 얼굴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닿던 손은 성분표에서 돼지고기를 가려내는 우즈베키스탄 소년의 손과 쉼 없이 돌아가는 구로공단을 오가는 손, 말이 뒤엉켜 쩔쩔매는 베트남 청년 짜미의 손과 나란히 놓인다. 어린 시절 가죽 가방 공장에서 실밥을 뜯던 손의 기억이 있었기에 시인은 “공단 길을 걷는 사람은 모두가 이방인이다”라고 쓸 수 있었다. 『미래가 태어나려면』이 비추는 미래는 안이한 위로나 낙관이 아니다. 부서진 자리에서 자란 한 사람이 자신과 닮은 얼굴들을 향해 뻗어 온 손이다. “나는 신발을 집에 두고/집을 던져 버린다”는 시인의 말처럼 과거의 굴레였던 집을 뒤로하다 길 위에 설 때 비로소 새로운 미래가 태어난다.
너와 내가 바뀌고 나와 네가 바뀌면 미국에 갈 수 있다 미국으로 간다면 반짝이를 붙인 채 미국으로 간다면 손톱은 글루 건이 필요한데 손을 씻을 때는 잠시 떼어 놓아야 하는데 손톱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아직 가 보지 못한 나라
각질과 각질을 붙인 채로 나의 손톱은 날마다 변하는데
말끔하고 시원하게 불완전하고 너덜거리게 불투명하고 산뜻하게 갑작스럽고 어색하게 긴밀하고 창백하게 화끈하고 화사하게 아프고 사랑스럽게 두근거리며 후련하게 매혹적이며 유쾌하게 차분하고 자신감 있게 까칠하고 충만하게 홀가분하고 희망차게 왕성하며 흐뭇하게 긴장되며 만족스럽게 지루하며 완벽하게 눈부시며 평범하게 우아하며 경솔하게 재치 있고 믿음직하게
뒤바뀐 손톱은 미래를 바꾸고 옷을 바꿔 입은 우리는 손톱을 바꾸고 애인을 바꾸고 얼굴을 바꾸고 거꾸로 된 세상에서 뭐든지 바꿀 수 있어 아직 가 보지 않은 나라 감쪽같이 살아남은 우리들이 있잖아
―「미래가 태어나려면」 전문
말씀은 모자를 쓴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부러웠다 그런 여자라면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글쎄, 태초는 미묘한 부스러기 같아서 빛이 저물지 않는 어느 여름날 말씀은 아이를 등에 업고 아이가 얼굴을 묻을 때마다 검은 잉크가 배어 나와 검은 그림자를 빼앗기고 마는 것
말씀이 자꾸만 공원에 가는 이유처럼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으면 어제의 다짐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늙은이는 젊은이를 찬미하고 젊은이는 늙은이를 저주하는데 경건한 손바닥에 귀 기울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누가 뭐래도 우리는 잘 도착했어
기차가 왜 오지 않았는지 좋은 시를 읽을 때마다 그 점을 잊지 않으려고 짐짓 턱을 끌어당긴다 오늘의 말씀에게 입을 맞춘다
―「예배」 전문
듬직한 어깨 뭉툭한 두 발
무엇이든 걸리면 걸어가는
오늘은 벗은 채로 옥상에 있기로 해
마늘 단이 걸려 있는 옷걸이
옷걸이를 보고 있으면
한겨울에 엄마한테 쫓겨났던 일이 생각나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잘못했다고 말하기 싫었거든
늦은 커피는 통쾌하고
오늘의 생각을 걸어 두는
오도 가도 못하는 천근만근의
어디에든 옷걸이가 있어
마치 망설임처럼
―「어떤 옥상이 있어」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유승영
서울에서 태어나 《서정과 현실》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하노이 고양이』, 합동시집 『시골시인-K』가 있다.
목차
1부
정부와 어린이
물의 기억
푸조나무에 구름이 걸렸어요
껍데기는 가라
Moon Day
오래된 문법
종이 천사
성탄제
Five Hundred Miles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우리들의 블루스
수궁
빙상과 예술
미래가 태어나려면
2부
창문의 힘
주의 영광 구하리
웃음을 참지 말아 줘
내가 모르는 나
할머니와 봉숭아
너를 칭찬해
이상한 가게
그루브
프란츠 카프카
인류는 채식 중
아! 봄날
자두나무 엄마
국경을 넘으면
3부
코리안 스쿨
드림 캐처
구로공단 혹등고래
내 사랑 응우옌은 이 사실을 몰라요
미광 핸드백
궁동 35번길
명사십리
다 함께 차차차
컵밥 쏘야
만민 공동회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좋은 제안
모모모든 유리는 성으로부터
예배
4부
How do you do?
구두 수선공
편의점
우리들의 불면증
별의 별로
타지마할의 오후
태을 씨는 아직 미혼이다
하노이는 그러니까
조형 언어
어떤 옥상이 있어
라인 댄스
서랍 속 서랍
우리가 혀라면
해설
실밥과 혀
—황유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