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안톤 체호프의 4대 대표 희곡인 「갈매기」, 「바냐 삼촌」, 「세 자매」, 「벚나무 동산」을 한 권으로 엮은 『체호프 희곡선』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대 연극의 지평을 연 체호프의 대표작들은 인간 소외와 일상의 비극을 통찰한다. 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체호프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깊은 공명을 선사하는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삶의 의미를 묻는 이들에게 가장 정직한 위로를 건넨다.
이번 선집은 러시아 나우카 출판사의 체호프 전집을 저본으로 삼아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를 충실히 살려 냈다. 특히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체호프의 극작 철학과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편지 스물 두 편을 함께 수록하여 대문호의 사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출판사 리뷰
“만약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그것도 의식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이미 산 인생 하나는, 말하자면 초고 같은 것이었고,
다른 인생은 아직 백지로 남아 있다면!”
러시아 문학사의 가장 빛나는 이름 안톤 체호프의 4대 대표 희곡
순간의 대화와 연약한 마음 속 불변의 진리를 포착한 현대 희곡의 시발점
가족, 막심 고리키 등 지인에게 쓴 체호프의 편지 스물두 편 수록
■ 삶의 비극을 농담으로 승화시킨 작가 안톤 체호프의 생애
체호프의 삶은 그 자체로 인내와 헌신의 기록이었다. 1860년 러시아 남부 타간로크에서 농노의 손자로 태어난 그는 파산한 아버지를 대신해 스무 살 무렵부터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의대에 진학한 후에도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많은 잡문을 써야 했으며 스스로를 작가이기 이전에 의사라고 불렀다. 의학적 관찰력은 그가 인간의 고통을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게 응시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는 결핵이라는 고질병과 싸우면서도 사할린섬을 횡단하여 유배지 실태를 조사하고 멜리호보 영지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마을 학교를 세우는 등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
초기에는 생계를 위해 쓴 단편 소설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푸시킨 상을 받는 등 작가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 갔다. 18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극작에 몰두하며 연극 무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 “무대의 관습을 거스르며 썼다.”고 스스로 말할 만큼, 당시 러시아 무대의 레퍼토리를 차지하고 있는 연극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 독창적인 작품을 집필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체호프는 자신의 작품이 사후 칠 년 정도만 읽힐 것이라고 농담했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 현대 연극의 시조로 평가받으며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저는 의사로서는 돈을 별로 안 좋아하고, 작가로서는 열정이, 그러니까 재능이 부족
합니다. - 체호프가 쓴 편지들 중에서
■ 무대의 관습을 허물고 인생의 진실을 세운 체호프의 4대 명작
체호프는 당시 유행하던 자극적인 사건 중심의 연극 구조를 거부하고 일상의 미세한 결을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갈매기」는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청년 작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을 통해 사랑과 야망의 허망함을 다루며 현대극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적 야심과 엇갈린 사랑을 통해 근대적 자아의 충돌을 그리며 무대 뒤로 사라진 총성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을 선보였다. 「바냐 삼촌」은 평생을 바친 이상이 허구임을 깨닫고 마주한 지독한 절망을 인내와 노동의 가치로 승화시키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세 자매」는 잡초처럼 우거진 현실에 밀려 끝내 꿈꾸던 모스크바로 떠나지 못하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고결함과 무력함을 동시에 형상화한다. 「벚나무 동산」은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이들의 몰락을 둔탁한 도끼 소리에 실어 보내며 시대의 변화 앞에 선 인간의 작별 인사를 서글프게 그려 낸다. 체호프는 오랫동안 극작의 첫 번째 원칙으로 여겨진 전형적인 플롯을 부정하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상투적 결말 대신 복잡하고 까다로운 삶의 이면을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등장인물들은 멜로디를 따라가듯 각자의 고독과 아픔을 노래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인생 교향곡을 완성한다.
■ 인생의 이유를 찾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대한 진실
체호프의 인물들은 정직하고 고결한 삶을 갈망하지만 현실의 무게 앞에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걸 알 수 있다면, 알 수만 있다면.”이라는 그들의 탄식은 정답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백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인물들을 심판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비루하고도 반짝이는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낸다. 현실이 잡초처럼 주인공들을 에워싸고 덮치는 순간에도 그들은 여전히 지금 여기와는 다른 삶을 꿈꾸며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삶의 모든 것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체호프 통찰은 고립된 개인들이 고독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경험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강력한 공명을 발휘한다.
이번 선집은 러시아 나우카 출판사의 체호프 전집을 저본으로 삼아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를 충실히 살려 냈다. 특히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체호프의 극작 철학과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편지 스물 두 편을 함께 수록하여 대문호의 사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새로운 형식이 있어야 돼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다고요.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게 나아요. (「갈매기」)
난 원칙이 있어요. 미래를 흘깃거리지 말 것. 난 절대 노년이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어차피 벌어질 일, 피하지 못할 테니까. (「갈매기」)
선생님, 종이 위에서 철학자가 되는 건 쉽지만 현실에선 정말 어렵답니다! (「갈매기」)
작가 소개
지은이 :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이자 희곡 작가인 체호프는 1860년 남부 아조프 해의 항구 도시 따간로그에서 태어났다. 식료 잡화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가족들이 모스끄바의 빈민가로 이주한 이후 그는 홀로 따간로그에 남아 고학하며 중등학교를 졸업했다. 모스끄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한 뒤 의사가 되기까지 체호프는 생계를 위해 필명으로 유머 단편들을 쓰기 시작했다. 본명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은 1886년 「추도회」가 처음이었다. 2년 뒤 단편집 『황혼』이 뿌쉬낀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인정을 받았다. 「귀여운 여인」은 똘스또이의 절찬을 받았으며, 차이꼬프스끼, 고르끼 등과 교유하며 러시아 문학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의사 출신답게 그는 인생을 냉정한 눈으로 파악한 리얼리스트였으나 작품의 분위기는 유머러스했으며, 문체는 직접적이고 강렬하기보다는 암시적이고 서정적이었다. 후기 체호프의 관심은 단편소설보다는 희곡으로 기울어 「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과 같은 세계 희곡사의 걸작들을 써냈다. 거창한 사상이 아니라 삶의 사소함에 주목하는 체호프의 작품은 읽기 쉬우며 누구에게나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러나 해석하려고 들면 그의 작품은 누구의 것보다 어렵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커다란 그림을 그려 내는 한 방향의 증거 자료들이 아니라, 통일된 해석을 거부하는 <서로 연관되지 않는 평범한 삶의 진실들>이기 때문이다. 연극 예술의 위대한 개혁가였던 스따니슬라프스끼조차 체호프의 담담한 <진실의 병렬>을 비극으로 읽어 내고자 애썼고 그런 해석은 전통으로 굳어졌다. 그가 지독한 염세주의자라는 풍문은 그런 해석에 도움이 되는 신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체호프는 유머가 넘치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체호프는 1904년, 4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즉 그는 평생 젊은 작가였다. 늙은 똘스또이를 감동시켰던, 인생의 고달픔과 수수께끼를 누구보다도 원숙하고 차분한 어조로 들려줄 수 있던 능력은 한 젊은 천재의 소유였던 것이다. 체호프 이후 단편소설은 장르 자체가 <체호프화>되었으나, 그의 수준에 도달한 작품은 매우 적었다.
목차
갈매기 7
바냐 삼촌 119
세 자매 223
벚나무 동산 365
체호프가 쓴 편지들 477
작품 해설 529
작가 연보 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