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노벨문학상, 부커상 2회 수상자 쿳시의 문학적 새 지평
★2026년 5월 칸영화제 프리미어 상영 화제 <여기(Aqui)> 원작
★“쿳시는 눌리고 짓밟히고 뒤집힌 타자를 위한 글을 쓰는 작가다.”_왕은철
★ 파이낸셜 타임스 2013 올해의 책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집요한 탐색.”_워싱턴포스트
“산다는 것은 대단한 거란다.
그 무엇보다도 대단한 거란다.”_33쪽소설의 새 지평을 넓힌 쿳시의 작품이 찾아왔다. 기독교의 뿌리인 예수의 어린 시절에 착상해서 알레고리를 만들고, 현대의 난민과 소외자들처럼 눌리고 짓밟히고 뒤집힌 타자를 위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예수의 어린 시절』은 간명한 소설 서사에 밀도 높은 문장으로 삶의 철학을 녹여내 2013년 출간 당시 큰 관심을 받았으며, 이번이 국내 초역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흘러들어오는 스페인어권 도시 노비야. 전쟁과 기후위기, 박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그래도 과거를 바라보는 어른들이 있다. 영특한 난민 소년 다비드는 그들에게 어린 왕자처럼 귀엽고 난처한 질문을 해댄다. “왜요?”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인간의 본성이 뭔데요?” “그게 제 잘못인가요?” 자식을 바르게 훈육하려는 모든 부모 앞에 던져지는 질문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삶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다비드가 원하는 건 지금 여기(aqui), 현재에 사는 것이다. 이 튀는 아이를 자기들 나름으로 바르게 안내하려는 어른들의 갈등과 노력이 눈물겹다.
『예수의 어린 시절』은 난민과 환대, 교육과 언어, 기억과 정체성, 정의와 사랑의 주제를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려낸다. 나와 다른 낯선 타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고 더 나은 사회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이 소설은 살 곳을 찾아 떠도는 이들과 그들에 대한 환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겹친다.
간결한 문장과 놀라운 상상력, 철학적 깊이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나머지 ‘예수 3부작’인 『예수의 학창 시절』과 『예수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예수 3부작’은 영화 <여기>(Aqui, 지금 여기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만들어져 2026년 5월 칸영화제 프리미어 부문에서 상영돼 화제를 모았고, 하반기에 전세계에 배급될 예정이다.
이 책의 흥미로운 고갱이 다섯 가지1)예수는 나오지 않지만 독자는 예수를 만난다.
2)독자는 쿳시가 마치 독자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3)소설 배경인 노비야는 사후세계이지만, 과거 기억만 사라졌을 뿐 현실세계와 똑같다.
4)난민을 포함한 이주민들의 불안한 현실을 조명한 빼어난 알레고리 소설이다.
5)『예수의 어린 시절』을 포함한 '예수 3부작'은 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영화 <여기(Aqui)>의 원작이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 다시 쿳시의 작품과 사랑에 빠졌다.”_독자
심오하고 아름다우며 끊임없이 놀라움을 안겨준다
★영특하고 조숙하고 삐딱한 난민 아이의 좌충우돌 성장기
★과거를 씻어내고 새 삶을 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의롭고 동정적인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담은 소설
★수천만 난민의 실존적 고뇌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야기
★교육, 철학, 언어, 실존, 종교, 사랑, 동료애, 이민에 대한 사유
쿳시의 후반기 최고 소설“쿳시의 작품 가운데 가장 힘차고 눈부신 소설.”(문학평론가 벤저민 리틀)로 평가받는 『예수의 어린 시절』은 국내 독자의 눈 밖에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쿳시의 후반기 최고 소설”(왕은철 문학평론가)이라는 평을 받고 있고, 2013년 출간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 ‘올해의 소설’에 오르는 등 미디어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학계에서는 지금도 이 소설을 포함한 ‘예수 3부작’에 대한 논문이 끝없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26년 칸영화제 프리미어 부문에서 상영돼 화제를 모았던 <여기(Aqui, 스페인어)>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 <여기>는 『예수의 어린 시절』 앞부분(33쪽)에서 다비드가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거예요?”라고 묻는 장면, 그리고 『예수의 죽음』에서 주인공 다비드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질문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등을 연상시킨다.) 쿳시 전문 번역가인 왕은철 전북대 명예교수가 공들여 번역한 이 작품이 말하는나무에 의해 이제야 국내 독자에게 소개된다.
이 소설은 난민 소년 다비드가 노비야라는 스페인어권 가상 지역에 정착하며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노비야에 온 사람들은 모두 과거의 일을 잊고 새 삶을 시작한다. 난민을 받아준 이 도시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전체주의 체제이고 엄격히 통제되는 사회다. 새로 온 이방인에게 노비야 당국은 평범한 집과 식량, 의료, 교통, 교육, 직업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하지만 새로 도착한 사람들은 이 도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배에서 엄마 이름이 적힌 편지 주머니를 잃어 고아가 된 다비드는 우연히 친절한 아저씨 시몬을 만난다. 다비드에게 그는 대부를 자처하며 엄마를 찾아주겠다고 한다. 노비야에서 시몬은 우연히 그러나 운명처럼 만난 이네스라는 젊은 여성에게 다비드의 엄마가 되어달라고 요청하는데, 처음에는 황당해하던 이네스는 마치 계시라도 받은 듯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는 신의 아들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 되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다비드는 두 사람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라지만 천성이 끊임없이 불편한 질문을 해대는, 영특하고 조숙하고 삐딱한 아이다. 로저 벨린은 로스엔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에서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 즉 사회적 세계와 의미의 세계 모두에 끝까지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다비드의 모습은 지적으로 매혹적이며,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면모이기도 하다.”라고 평했다.
시몬과 이네스는 이런 다비드가 새로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한다. 다비드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 돈키호테』로 스페인어를 익히는데, 그 책을 늘 끼고 생활하며 풍차를 실제 거인이라고 생각하거나 돈키호테를 영웅이자 마술사로 생각한다. 하지만 다비드가 학교에서 엄격한 담임선생의 미움을 사 소년원에 보내질 위기에 처하면서, 이 느슨한 형태의 가족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결국 모두 함께 노비야를 떠나 새 삶을 찾아 나선다.
난민들의 불안한 현실 조명이 소설은 간명한 이야기 구조를 갖지만, 교육, 철학, 언어, 실존, 종교, 성애, 난민, 정의, 동정 등에 대한 문답이 끊임없이 나와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전소영 박사는 논문(‘타자의 공간 –쿳시의 예수의 어린 시절’)에서 “『예수의 어린 시절』에서 소설은 스토리 자체의 전개보다는 철학, 문학, 언어,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담론의 장소.”라고 평했다. 소설을 사유와 깨달음의 형식으로 여기는 쿳시의 관점이 반영된 작품이랄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치는 어디에선가 이주해온 사람들의 어려운 현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데 있다. 엘커 뵈머 옥스퍼드대 교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비선진국)를 포함한 ‘더 사우스(The South)’에서 일어나는 이주를 위한 횡단이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갖고 있는데 『예수의 어린 시절』이 그 현실을 조명하고 있다”고 논문에서 짚었다.
번역자 왕은철 교수는 이 소설을 디아스포라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다고 옮긴이 해설에서 밝혔다. "자신이 살던 고향이나 나라를 떠나 낯선 땅에 가서 낯선 언어를 배워 소통하며 살아가는 시몬과 다비드의 이야기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난민이나 이민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왕 교수는 또 이 소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환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환대에 관한 심오한 담론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메시지의 가치는 충분하다.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갈등, 박해, 빈곤, 기후변화 등의 이유로 강제 이주한 사람들은 1억 명이 넘는다. 쿠르드 난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 미국의 남미 난민, 북한이탈주민 출신 한국인들도 차별 앞에 노출돼 있다. 쿳시는 그런 현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 고발하면서,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예수는 나오지 않지만 독자는 예수를 만난다쿳시는 소설에 『예수의 어린 시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독자는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성경에 예수의 어린 시절을 증거하는 내용은 탄생 장면(누가복음, 마태복음 등)과 12살 시절의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한 장면(누가복음) 등 몇몇 구절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소설에는 ‘예수’라는 인물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가는 예수로 치환할 수 있는 다비드라는 아이를 배치했다. 학교 교육과 숫자 체계를 거부하는 다비드는 평범한 아이 같으면서도 메시아적 암시를 지닌다. 다비드는 “내가 진리다.”라는 문장을 칠판에 쓴다. 이는 예수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복음 14장 6절)라고 말한 것을 연상시킨다. 다비드는 늙은 말이 죽자, 사흘 후에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다비드는 곤경에 처한 민중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돈키호테 책을 늘 끼고 살고, “저는 구원자가 될래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독자는 소설 속 다른 인물들로부터 예수의 실존을 그리워하는 문장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게 된다. 시몬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가, 어떤 구원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마법의 지팡이를 흔들며 ‘보라, 이 책을 읽어라. 거기에 너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다.’ 혹은 ‘보라, 여기에 너를 위한 전적으로 새로운 삶이 있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시몬은 노비야 사람들 가운데 이전 세계에 대한 기억의 그림자를 가장 많이 가진 인물이다. 육체는 늙었지만 정열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의 눈에 노비야 사람들의 삶은 너무 단조롭고 핏기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열정을 갖고 부족한 뭔가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는 시몬의 생각은 낡은 사고방식으로 여겨진다.
그에 반해 다비드는 기억의 피조물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아이다. 다비드의 친구 피델의 엄마 엘레나가 말한다.
“아이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살아요. 그들에게 배우면 어때요? 변모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다시 아이처럼 되어보는 건 어때요?”
현실의 연장선 같은 사후세계노비야라는 도시는 가상의 공간이다. 쿳시는 소설을 발표(2013년)한 지 12년 만에 내놓은 대담집 『방언으로 말하기』(Speaking in Tongues)에서 노비야는 사후세계(afterworld)라고 밝혔다.
하지만 환상이 뒤엉키는 공간이 아니라 놀랍게도 현생의 기억만 사라진, 현실 세계의 연장선 같은 곳이다. 즉 쿳시의 작품에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고대 이집트 쿠푸왕이 태양의 배를 타고 사후세계를 여행한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배를 타고 어딘가에서 건너와 수용소가 있는 벨스타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노비야로 간다. 사후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외롭지 않도록 함께 산다. 전체주의 같은 세계지만 거기서도 끝없이 바른 인간성과 이상향을 찾아서 나아간다. 쫓기듯 노비야를 떠나게 되자 다비드는 새 도시에 가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묻는다. 시몬은 “머물 곳을 찾아 새 삶을 시작하는 거지.”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죽은 뒤에도 더 나은 삶을 찾아서 끝없이 나아가는 것임을 말하는 듯하다.
문학은 죽음 뒤의 세계를 끊임없이 상상해왔다. 단테의 『신곡』이나 사르트르의 『닫힌 방』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예수의 어린 시절』도 그 뒤를 이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산다는 것은 대단한 거란다. 그 무엇보다도 대단한 거란다.
“급여담당관 말이니? 급여담당관이 그자가 원하는 것을 다 줬어야 한다는 말이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는 없었다. 급여담당관이 각자에게 우리에게 원하는 대로 다 준다면 돈이 바닥나겠지.”
“왜요?”
“왜냐고?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합당한 것 이상의 것을 원하니까 그렇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란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치 이상의 것을 원하니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