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나경 시인의 시들은 한결같이 자연의 섬세한 변화와 일상의 찰나에서 길어 올린 서정적인 고찰을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커피 한 잔의 온기와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비우는 삶의 태도와 예술적 감상을 통해 얻는 평화와 행복의 가치를 품위 있게 노래하고 있다. 일부 시에서는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5·18 민주화 운동의 비극을 역사적 아픔과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시켜 놓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나경 시인의 시들은 찰나의 아름다움 속에서 인생의 유한함과 영원한 사랑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적 탐구의 여정을 보여 주고 있다.
출판사 리뷰
김나경 시인의 시들은 한결같이 자연의 섬세한 변화와 일상의 찰나에서 길어 올린 서정적인 고찰을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커피 한 잔의 온기와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비우는 삶의 태도와 예술적 감상을 통해 얻는 평화와 행복의 가치를 품위 있게 노래하고 있다. 일부 시에서는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5·18 민주화 운동의 비극을 역사적 아픔과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시켜 놓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나경 시인의 시들은 찰나의 아름다움 속에서 인생의 유한함과 영원한 사랑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적 탐구의 여정을 보여 주고 있다.
- 박덕은(문학박사, 문학평론가, 광주특별시문인협회 회장)
▣ 작품론
| 평설 |
김나경 시인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박 덕 은
(문학박사, 전 전남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광주특별시문인협회 회장)
대자연의 정취와 삶의 이력을 바탕으로 2021년 3월, 문학 전문지 《문학시선》에 시 「겨울」로 등단하며 시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하얀 백설의 순수함을 노래한 등단작을 시작으로 꾸준히 창작에 매진한 결과, 《강원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전국환경문학대상’에서 수필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김나경 시인의 시 세계로 탐험을 떠나보자.
진한 향 코끝 찌르고
꽃바람 타고 멀리 퍼지면
정다운 찻잔에 안기어
마음 곱게 내려앉는다
말할 수 없는 상흔은
뜨거운 열기로 보내 버리고
부드러운 선율
빚고 또 빚어
맑게 피어나는 가슴
사랑하리.
- 「커피」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행위를 통해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고 사랑의 감정을 회복하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8세기 유럽 철학계를 대표하는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지독한 커피 마니아였다. 루소는 우유를 섞어 고소하고 부드러운 카페 올레Cafe au Lait를 즐겨 마셨다. 루소의 커피 사랑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일화가 있다. 1778년 7월 2일 아침, 평소처럼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아내 테레즈가 타 준 카페 올레를 마시려던 순간 루소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아, 이제 더 이상 커피잔을 들 수 없구나.” 그에게 커피는 사유를 돕고 글을 쓰는 데 꼭 필요한 맑은 영혼의 연료였다. 이 시에서도 사유와 창작을 낳는 커피가 진한 향을 풍기고 있다. 시적 화자는 커피 향을 맡으며 “정다운 찻잔에 안기어/ 마음 곱게 내려앉는다// 말할 수 없는 상흔은/ 뜨거운 열기로 보내 버리고” 있다. 커피가 시적 화자의 아픔과 슬픔을 내려놓게 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상흔”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의 모호성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아픔도 저 커피 향에 실어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적 모호성은 구체성의 휘감김이 없어도 기억과 상상의 끌어당김이 있어 사유의 공간은 확장된다. 시적 화자는 커피를 마시며 “부드러운 선율/ 빚고 또 빚어// 맑게 피어나는 가슴”으로 꽃피어난다. 이 지점에서 시적 화자의 커피 예찬이 빛을 발한다. 신神은 커피를 만들고, 커피는 맑은 사유와 창작을 만든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서 “부드러운 선율”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내려놓음, 비움, 용서, 관용과 같은 마음의 정화일까. 아니면 루소가 즐겨 마신 부드러운 카페 올레와 같은 감각의 선율일까. 아마 블랙커피여도 부드러운 선율로 다가왔을 것이다. 시적 화자는 코끝을 찌르는 진한 향기가 허공으로 퍼져 나가는 찰나를 포착하여, 차가운 마음의 상처를 뜨거운 열기로 승화시키는 정서적 정화를 보여 주고 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증기처럼 날려 보내고, 그 빈자리를 부드러운 선율과도 같은 평온으로 채우는 것이 이 시의 핵심 서사구조이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일상의 짧은 휴식을 통해 맑게 피어나는 생명력과 사랑을 예찬하며, 독자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어느새
가을바람 불어와
꽃들이 반짝반짝
멋진 풍경 만들어준다
모진 세파 이겨 내고
행복하다고
졍겨운 사연 속에
마음도 담아 보는 길
자존심은
결코 내어 주지 않고
잘 버티는
약자의 강한 모습
비바람에 한 서려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바람결에 살랑살랑
손 흔들어 준다.
- 「억새꽃」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시련을 견뎌내고 가을바람 속에 피어난 억새꽃을 통해 인내와 긍지라는 주제를 아름답게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억새꽃은 유연한 강인함, 순응의 지혜, 그리고 존재의 견딤을 상징하는 인문학적·생태적 은유로 자주 다뤄지고 있다. 유연함과 순응의 철학적 의미로 억새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이 시에서도 그와 같은 삶의 태도가 엿보인다. “모진 세파 이겨 내고/ 잘 있다고/ 반갑게 손 흔들어 주어/ 아름다운 사연 담아”내고 있다. 억새를 통해 존재의 견딤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가을이 지나고 모든 기능적 유용성이 사라진 뒤에도 꼿꼿이 서 있는 억새의 ‘빈 대롱’ 이미지가 우리의 존재론적 사유를 자극한다. 억새는 화려한 전성기뿐만 아니라 소멸과 고독의 순간까지 묵묵히 살아내는 생명의 존엄함과 실존적 깊이를 잘 보여준다. 이 시에서도 억새에 대해 “자존심은/ 결코 내어 주지 않고/ 잘 버티는/ 약자의 강한 모습”이라고 표현하며 실존적 깊이를 느끼게 한다. 독일의 전설적인 정원사 사상가 칼 푀르스터Karl Foerster의 ‘숙근초 철학Perennial Philosophy’에서 겨울철 눈과 서리를 맞으면서도 꼿꼿이 서 있는 억새의 마른 대롱과 갈색 깃털을 정원의 위대한 미학으로 보았다. 그는 억새를 통해 자연의 섭리와 존재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이 시에서도 억새를 통해 존재의 견딤과 순응 그리고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모진 풍파를 이겨낸 꽃들이 손을 흔들며 안부를 전하는 모습은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약자의 강인한 자존심과 변함없는 절개를 상징하고 있다. 고난의 흔적인 한을 품으면서도 정겨운 추억을 찰랑이며 쏟아내는 억새의 자태는 보는 이에게 깊은 위로와 생명력을 전달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비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내면의 단단함이 지닌 숭고한 가치를 일깨워 주고 있다.
아프게 하는 건 접고
멀리 바라볼 수 있어
아름답다
고운 감정 담고
사랑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물처럼 살다가
강물 되어 바다로 흘러가는
세상은 참 넓다
주어진 대로
떠나가는
속절없는 인생
빈자리 채우기 전에
종착역이
나를 기다린다.
- 「비우는 행복」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고통을 뒤로하고 마음을 정화하며 삶을 관조하는 비움의 미학을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채워야 행복할 것 같은데 비워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공부를 하고 직장을 잡은 이유도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인데 비움의 철학을 깨달아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소위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까지 있다. 미니멀 라이프는 불필요한 물건과 습관을 비우고 삶의 본질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 주변이 깨끗해지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이 커진다고 한다. 채우지 않고 비우는 삶이 왜 이리 중요할까. 동양의 노장 사상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만들어 도道와 통하고자 한다. 불교의 공空 사상에서는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집착을 내려놓을 때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그 비움과 내려놓음이 이 시에서도 읽힌다. “아프게 하는 건 접고/ 멀리 바라볼 수 있어/ 아름답”다며 집착을 내려놓는다. 멀리 바라본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어떤 결단이며 방향성이다. 시적 화자는 멀리 바라볼 수 있기에 “고운 감정 담고/ 사랑할 수 있으니/ 행복하”며 비움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비움의 실천적인 모습을 “물처럼 살다가/ 강물 되어 바다로 흘러가는/ 세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시적 화자의 태도가 엿보인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낸 자리에 사랑과 평화를 채워 세상의 광활함을 마주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고, 시의 후반부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 흐르는 인생의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강물이 바다로 향하듯 우리 삶도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나아가는 유한한 과정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욕심을 내려놓고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담담한 어조로 전달하고 있다.
조용한 침묵 깨고
화려하게 승화된 품격들이
쭉 줄지어 반긴다
가슴으로 품어낸
저 위대한 산
하나하나 혼신의 마음 담아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로
실컷 날아 앉아 보는
끝없는 미래의 성
맑은 영혼의 힘은
온 세상 정복하고 남아
연못까지 붉게 물들이는 사랑
환한 등 밝혀주는 손길은
푸른 허공 가로질러
별빛으로 수놓아 멋진 풍경 이루고 있다
오늘도 그 품에 안겨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시간
참 행복하다.
- 「서양화 전시실에서」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서양화 전시실이라는 공간에서 마주한 예술 작품들이 선사하는 숭고한 정신적 경험과 그로 인한 내면의 충만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시어로 쓴 한 편의 미학이다. 미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름답다’ 고 느끼는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왜 화가가 그린 그림 앞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자유로움을 느낄까. 철학자 칸트는 그의 미학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무관심성, 목적 없는 합목적성, 그리고 숭고함에 대해 말했다. 칸트는 무관심성에 대해 어떤 실용적 목적이나 소유욕 없이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볼 때 참된 미적 경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림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온몸의 감각으로 그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온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가슴으로 품어낸/ 저 위대한 산”이라며 그림에 대해 평을 했다. 화가가 캔버스에 남긴 흔적을 통해 보이지 않는 깊은 생명의 감각을 느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적 화자는 그림이라는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로/ 실컷 날아 앉아 보는/ 끝없는 미래의 성”을 쌓으며 서양화를 감상하고 있다. 그림 속으로 성큼 들어가 비가시적인 것들을 읽어내고 있다. 침묵을 깨고 나타난 예술적 형상들은 시적 화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무한한 미래와 영혼의 힘을 탐구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사랑의 온기로 승화시켜 놓고 있다. 시적 화자는 별빛처럼 수놓아진 작품의 풍경 속에서 예술과 물아일체가 되는 행복을 느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평화로운 안식을 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는 예술이 지닌 치유의 힘과 영원성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찬란하게 밝혀주는지를 우아하게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창밖에 빗물이 주룩주룩
눈물도 한 방울 뚜욱
힘들었던 청춘도 함께 흘러간다
아쉬운 그리움의 미련은
얼만큼 더 가야
번뇌 망상 다 잊을까
흐르는 빗물로
마음 촉촉이 적시면
사랑과 행복은
행운의 선물
아름답게 살아가라 한다.
- 「비 오는 날」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통해 내면의 고통과 지나간 청춘의 아쉬움을 씻어내는 정화의 과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문학 속에서 ‘비’는 슬픔과 그리움, 시련과 정화의 다채로운 심상으로 형상화된다. 고시조에서 나타난 ‘비’의 문학적 비유와 의미도 ‘눈물의 비유’와 ‘시련의 비유’ 등으로 형상화된다. 이 시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빗물이다. 빗물은 시적 화자의 슬픔과 눈물을 대신 표현하며 마음을 정화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객관적 상관물이란 화자의 정서와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상황을 말하며, 감정이입, 정서 대비, 정서 환기 등의 개념을 포괄하는 넓은 문학적 표현 방법이다.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의 힘든 청춘과 눈물이 ‘빗물’에 투영되어 흘러간다. 또 빗물은 정서 매개체로서 ‘흐르는 빗물’을 통해 번뇌와 아쉬움을 씻어내고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삶의 위로와 깨달음으로 연결된다. 비의 문학적 이미지가 애상과 우울이다. 비가 지닌 낙하와 소멸의 속성으로 인해 인간의 근원적 고독, 절망, 눈물을 상징한다. 시적 화자도 소멸의 속성인 비를 통해 “아쉬운 그리움의 미련은/ 얼만큼 더 가야/ 번뇌 망상 다 잊”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비의 이미지에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눈물도 한 방울 뚜욱/ 힘들었던 청춘도 함께 흘러”간다며 비의 속성에 눈물과 힘들었던 청춘을 잘 연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비에 젖어 드는 풍경 속에서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번뇌와 망상을 내려놓고, 비로소 영혼을 촉촉이 적시는 회복의 시간을 맞이한다. 결국 슬픔의 눈물을 디디고 일어선 자리에 사랑과 행복이라는 삶의 축복이 찾아오며, 독자에게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긴 겨울잠 깨고
새 생명 잉태하는 사랑
숭고하다
연둣빛으로 물들어
상큼하게 다가서는 얼굴
평화롭다
추억 안고
멀리 떠나가는 사랑마차
경이롭다
때가 되면
다시 찾아와 안기는
그 모습 아름답다.
- 「새싹」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긴 침묵을 깨고 피어나는 생명의 탄생과 순환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해 놓고 있다. 새싹은 생명의 시작, 변화와 가능성, 그리고 역동적 존재론을 상징한다. 동서양 철학에서 존재의 근원과 성장 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은유로 쓰인다. 동양 철학에서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하며, 마음속에 있는 선한 마음의 씨앗이 싹트는 과정을 새싹에 비유했다. 새싹이 자라 큰 나무가 되듯, 인간의 작은 도덕적 마음을 잘 가꾸고 길러야 온전한 덕(인·의·예·지)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 유교 철학이 “긴 겨울잠 깨고/ 새 생명 잉태하는 사랑/ 숭고”하다에 담겨 있다. 추운 겨울 속에서도 마음의 수양을 하며 잉태하는 사랑을 예찬하고 있다. 새싹을 통해 인간의 성장을 얘기하며 “연둣빛으로 물들어/ 상큼하게 다가서는 얼굴/ 평화”롭다고 말한다. 우리의 성장이 저 새싹처럼 연둣빛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다. 때 묻지 않은 연둣빛의 새싹은 인간의 순수한 동심 또는 모든 존재의 역동적인 시작을 의미한다. 그 순수함과 강인한 생명력과 역동성 때문에 “때가 되면/ 다시 찾아와 안기는/ 그 모습 아름답”다고 예찬한다. 그러면서 자연의 섭리가 지닌 숭고함을 찬양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새싹이 돋아나는 찰나의 순간을 평화롭고 상큼한 얼굴에 비유하여, 겨울의 끝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의 기쁨을 정겹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떠나감과 되돌아옴을 반복하는 사랑마차의 경이로운 여정을 통해, 생명은 단절되는 게 아니라, 때가 되면 다시 찾아오는 영원한 아름다움임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자연의 사랑을 명상적인 시선으로 응축하여 보여 주고 있다.
까만 촛대 위에
화려한 병풍 펼쳐지면
세월 한 자락 깔아 놓는다
혹독한 한파 가슴 떠밀어도
한 발 한 발 올라서면
든든한 어머니 품속
모진 설움 끝에 맺힌
주상절리대 환호성
그리운 벗님 맞이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풍경 바라보며
머물다 가는 환상의 천국.
- 「무등산 서석대」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무등산 서석대 정상에 올랐을 때 마주하는 자연의 경외감과 포용력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무등산無等山은 등급이 없는 산을 뜻한다. 없을 무無에 등급 등等을 써서 ‘비할 데 없이 높거나 등급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존귀하다’는 뜻, 또는 불교 화엄사상의 ‘무등등無等等 — 부처의 경지처럼 차별이 없음’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무등(無等)은 만인의 평등을 뜻해, 인간이 만든 신분, 권력, 부의 잣대로 차별하지 않고 모든 군상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자연의 평등함을 뜻한다. 무등산은 조선 시대 가사문학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등이 태동한 곳으로, 자연과 합일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사유와 예술혼이 서려 있다. 그와 같은 사유와 예술혼을 시적 화자는 “까만 촛대 위에/ 화려한 병풍 펼쳐지면/ 세월 한 자락 깔아 놓”고 있다로 표현하고 있다. “세월 한 자락”에 사유와 예술혼과 시대의 아픔에 저항하는 광주정신이 담겨 있다. 광주 시민들은 무등산을 어머니의 품속처럼 여기며 자주 찾는다. 사는 게 팍팍해 위로받고 싶을 때 산을 찾는다. 그런 시민들의 마음을 “혹독한 한파 가슴 떠밀어도/ 한 발 한 발 올라서면/ 든든한 어머니 품속”이라며 무등산을 예찬하고 있다. 광주에 무등산이 없었다면 그 많은 설움을 어떻게 견뎠을까. 시민들은 무등산에 슬픔을 기대고 내일을 의지하며 여기까지 걸어왔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들이 “모진 설움 끝에 맺힌/ 주상절리대 환호성”으로 표현되어 있다. 시적 화자는 깎아지른 듯한 주상절리를 어머니의 품과 같은 따스한 안식처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역경 끝에 도달한 눈부신 풍경을 환상적인 천국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세월의 흐름과 고난을 견뎌낸 바위들이 내뿜는 환호성은 고독한 등반객에게 건네는 반가운 환대이자, 인간의 고통을 씻어 주는 영성적인 위로로 승화되고 있다.
정월 보름이면
묵 쑤어 장독대 두고
시원하게 먹었던
어머니 손맛
강한 생명력 지니고 태어나
성장도 빨라
잡풀을 이겨낸
자랑스런 식물
초여름에 심으면 잘 자라
하얗게 피어난 꽃들은
잔잔한 정원 이루어
꼭 어머니 보는 것 같다
수확하였지만
작품 만들어 보지만
맷돌 이용해 만들었던
그 옛날 맛 잊을 수 없다.
- 「메밀」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낮과 밤과 적막을 뚫고 하얗게 피어나는 메밀꽃과 그 결실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메밀은 한반도에서 오랜 역사 동안 사랑받아 온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자, 오늘날에는 건강식과 별미로 자리 잡은 친숙한 식재료이다. 메밀꽃은 주로 가을철 들판을 하얗게 수놓으며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는 꽃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1936년 잡지 《조광》에 발표된 이효석의 대표 단편소설이다. 한국 현대 문학에서 ‘메밀꽃’은 단순히 자연 배경을 넘어, 인간의 운명적인 인연과 낭만적 예술성을 극대화하는 핵심 문학적 장치로 평가받고 있다. 일상에서 메밀묵은 겨울철 야식의 대명사이자 영양이 가득한 전통 웰빙 음식이다. 또 메밀묵에는 어떤 추억이 깃들어 있다. 과거 “메밀묵~ 찹쌀떡~” 외치던 야식 장수의 대표 메뉴로, 추운 겨울 밤에 출출함을 달래주던 추억의 음식이다. 그런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메밀묵이 이 시에서는 “정월 보름이면/ 묵 쑤어 장독대 두고/ 시원하게 먹었던/ 어머니 손맛”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메밀묵과 함께 시적 화자의 심장을 깨운다. 시는 이렇듯 기억의 심층으로 들어가 남과 다른 자신만의 질량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 과거와 오늘의 경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상처와 그리움과 방향성을 끄집어내야 한다. 시적 화자는 어머니와 메밀꽃을 연결하며 “하얗게 피어난 꽃들은/ 잔잔한 정원 이루어/ 꼭 어머니 보는 것 같”다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간다. 시적 화자는 거친 시간을 이겨내며 빠르게 성장하는 메밀의 특성을 어머니의 강인한 삶에 투영하여, 정원을 가득 채운 꽃잎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하고 있다. 이 시의 핵심은 과거 맷돌로 직접 묵을 쑤어주던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추억하면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족애와 옛 정취를 미각 이미지와 시각 이미지의 구현을 통해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오월은
푸른빛 가득 찬
아름다운 계절
장미꽃 빨갛게 피어나고
지저귀는 산새들 합창 소리
정겹고 평화롭다
뽀얗게 핀 아카시아 꽃잎
바람에 흩날리는 거리
갑자기 칼바람
캄캄한 밤에 찾아와
불고 또 불었다
빛고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피바다 되어 한 서린
오월의 바람
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슬픈 영혼들
그 바람 속으로 갔다
영원히 잊지 못할
바람이여
파란 청춘 멀리 보내고
자식 없는 긴긴 세월
가슴에 메아리쳐 어이 살았을까
라일락 꽃향 진하게 퍼지면
어김없이
오월의 슬픈 그날이 온다.
- 「5・18」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생동감 넘치는 오월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이면에 숨겨진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을 극적으로 대비하며 전개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며 전개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이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세력이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해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주요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김대중, 김종필 등 정치인들을 강제 연행했다. 5월 18일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등교가 막힌 학생들과 계엄군 사이에 첫 충돌이 일어났다. 5월 19일~20일에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유혈 진압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이 대거 시위에 동참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에 맞서 인간의 존엄과 연대 의식을 보여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이다. 관련 기록물들이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 수많은 문학·예술 작품의 바탕이 되었다. 이 시는 5·18 민주화운동를 칼바람, 캄캄한 밤, 오월의 바람 등으로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물을 통해 그 아픔을 표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시적 화자는 광주의 아픔을 “갑자기 칼바람/ 캄캄한 밤에 찾아와/ 불고 또 불”었다며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유혈 진압을 폭로한다. 광주의 서러움을 “빛고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피바다 되어 한 서린/ 오월의 바람”으로 에둘러서 표현하고 있다. 광주의 아픔은 다시 “라일락 꽃향 진하게 퍼지면/ 어김없이/ 오월의 슬픈 그날”이 다가온다며 토로한다. 처음에는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내 ‘칼바람’으로 상징되는 국가 폭력이 광주를 휩쓸 때 수많은 청춘이 희생된 참혹한 역사를 고발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영혼들의 한 맺힌 슬픔을 그리며, 남겨진 이들이 견뎌온 고통스러운 세월을 애도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해마다 꽃향기가 피어날 때면 어김없이 되살아나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와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작약꽃은
빨갛게 피어
아방궁을 이루고 있는데
오월 그날의 함성은
하늘 높이 솟아
별처럼 내려올 줄 모른다
지상의 녹음은
멜로디 되어
사랑으로 피어나는데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그대 빈자리
그리움에 눈물 적신다.
- 「가슴 아픈 달」 전문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화려하게 피어난 오월의 자연 풍경과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역사적 비극 및 개인적 상실감을 대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약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생김새로 사랑받는 대표적인 봄꽃이다. 여러해살이풀로 매년 지상부가 죽었다가 봄에 다시 싹이 난다. 주로 5~6월에 원줄기 끝에서 한 송이씩 핀다. 함박꽃이라고도 부르며 관상용과 약초로 널리 재배되고 있다. 시적 화자는 화려한 작약꽃을 “빨갛게 피어/ 아방궁을 이루고 있”다며 탄성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 탄성만큼 어떤 아픔이 다가오는데 “오월 그날의 함성은/ 하늘 높이 솟아/ 별처럼 내려올 줄 모”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작약꽃과 대비를 이루며 어떤 슬픔이 심장을 파고든다. 다시 시적 화자는 낭만적인 어조로 “지상의 녹음은/ 멜로디 되어/ 사랑으로 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 낭만과 대조를 이루며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그대 빈자리/ 그리움에 눈물 적”시고 있다고 아픔을 토로한다. 밝음과 어둠, 기쁨과 슬픔을 교차해서 시적 화자가 전달하고 싶은 어떤 아픔을 강렬하게 호소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붉게 피어난 작약꽃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도, 그 찬란함 이면에 서려 있는 과거의 함성과 못다 이룬 염원을 하늘 위의 별로 시적 형상화하며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상은 어느덧 푸른 녹음과 사랑의 선율로 가득 차 활기를 되찾았으나, 떠나간 이의 지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마주하며 여전히 깊은 그리움과 슬픔에 젖어 있다. 결국 이 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조차 가릴 수 없는 숭고한 기억과 사무치는 고독을 정제된 시어로 노래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김나경 시인의 시들은 한결같이 자연의 섬세한 변화와 일상의 찰나에서 길어 올린 서정적인 고찰을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커피 한 잔의 온기와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비우는 삶의 태도와 예술적 감상을 통해 얻는 평화와 행복의 가치를 품위 있게 노래하고 있다. 일부 시에서는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5·18 민주화 운동의 비극을 역사적 아픔과 숭고한 희생으로 승화시켜 놓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나경 시인의 시들은 찰나의 아름다움 속에서 인생의 유한함과 영원한 사랑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적 탐구의 여정을 보여 주고 있다.
앞으로도 제2, 제3, 제4 시집에 도전하면서 알뜰히 살아가길 빈다. 처음보다는 낯설게 하기, 즉 새로운 해석을 하면서, 또한 이미지 구현을 통해, 보다 성숙한 시들을 써내며, 여생을 향긋이 맞이했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나경
•아호 다미원•전남 장성 출생•《문학시선》 시 등단•<강원경제신문> 전국환경문학공모 수필부분 대상 수상•광주문인협회 이사 •한실문예창작아카데미 향그런문학회 회원•시집 『풀잎에 맺힌 사랑』
목차
작가의 말
축시/ 박덕은
제1부 행복한 봄날
동행·1
동행·2
아름다운 봄날
팬지 꽃
내 사랑 벚꽃
꽃바람
사랑의 미로
꽃
매화
벚꽃
배꽃
진달래
금낭화
비우는 행복
생일날
행복한 삶
봄바람
사랑하면
함께라면
아름다운 인연·1
아름다운 인연·2
문학도
배려
감사
서양화 전시실에서
초심
손님 오신 날
문흥지구
제2부 풀잎에 맺힌 사랑
나의 인생
풀잎에 맺힌 사랑
비 오는 날
커피
바람 부는 언덕길
속세
소원
번뇌·1
번뇌·2
못다 한 편지
그리운 사랑
보고픈 사랑
상흔·1
상흔·2
환희
일상
나의 인생·2
봄날
기다림
장화
선녀처럼
미처 몰랐습니다
뒤안길에서
물 따라 마음 따라
제3부 아름다운 벗
은구슬
새싹
뫼·1
뫼·2
뫼·3
대야산에서
아름다운 벗·1
아름다운 벗·2
무등산 서석대
소매물도
상고대
일편단심 봄
일편단심 여름
일편단심 가을
일편단심 늦가을
일편단심 겨울
가을 나그네
첫사랑 순결
봄비
무지개
숭고한 사랑
가뭄 끝
무등산의 봄
제4부 가을 단상
낙엽·1
낙엽·2
가을 단상
가을
허공
깊어 가는 가을
일생
풍성한 가을
내 사랑 땅콩
억새꽃
메밀
밭작물
가을 선물
국화꽃 사랑
제5부 가슴 아픈 달
꽃무릇
잊히지 않는 인연
가슴 아픈 달
어머니
아버지
5·18
평설/ 박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