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 시조, 한시, 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보우 시인이 시집 설산에서(작가마을시인선 76)를 펴냈다. 보우 시인은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전망 좋은 사찰인 관음정사 주지로 있는 스님 시인이다. 하여 ‘보우’는 법명이자 필명이다.
보우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단순히 종교적 시각에서만의 사물관찰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마주한 주제들을 대상으로 무의식의 현상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표현은 ‘물컵도 비울 줄 안다’처럼 자신을 낮추는 시각으로 고요한 종교적 사색의 이면을 보여준다. 주변부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의 곡진한 모습과 세계의 질서를 한 권의 시집이지만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행간의 폭을 넓혀나가는 보우 시인의 부드러운 문학성이 돋보인다.
출판사 리뷰
◉전문가 서평
보우 시집 『설산에서』는 연기법을 터득하고 일체 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알음알이로 정진 수행하는 출가 수행자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비단 종교의 시각에서 읽지 않아도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내면의 음성에 귀 기울이다 보면 보우 스님의 시편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일에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생의 처지에서 보면 시편 전반에 흐르는, 세계를 참된 실상을 헤는 눈으로 여여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맑은 목소리가 고요하다 못해 귀에 또렷하게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런 느낌은 아무래도 독자들이 번잡한 언어로 무의식과 감각의 복잡한 현상을 비일상적이고 난해한 언어로 붓칠하는 오늘날의 현대 시에 강하게 중독되어 있는 사실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이런 현상을 목격하면 무릇 ‘문학’의 기능과 목적을 다시 한번 곱씹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실상을 파악하여 사람들에게 존재와 사물의 본바탕과 진실을 전하면서 각자가 지닌 마음의 참된 통로를 열어주는 문학작품의 다양한 기능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고전으로 남아 있는 동서양의 수많은 작품들은 우리에게 세상의 진실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래서 이런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는 메시지와 음성을 단순하고 간명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왜곡하거나 복잡한 셈법으로 각색할 우려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문학에 대한 선입견으로 보우의 시를 읽어도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는 언어로 우리의 소박한 느낌과 정서, 그리고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의 외관을 깨끗한 눈길로 읽어내는 시인의 언어를 두고 오히려 시원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시인이 비록 몸은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출세간을 누비는 수행승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시편에 형상화한 소재와 대상이 필자처럼 중생의 시각으로 잡아낸 소재와 대상이라기보다는 이미 삼보(三寶)에 귀의한 존재의 시각에서 들여온 소재와 대상이라고 이해하는 게 옳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그런 ‘실존적’ 처지와 배경에서 읽으면 다른 시인의 작품을 읽는 것보다 더욱 시인의 마음자리를 헤아리게 될 것이다.
-정훈(문학평론가)
흐르는 물을 보며
산비탈 맑은 물 말없이 흐르고 흘러
잔돌에 부딛히고 소란스레 굽이 처 흐르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 말없이 모두 받아
가슴에 품어 흐르고 때론 땅속으로 쓰며 들며
웅덩이 머물다가 높다란 낙수가 되기도 하지
저 굽이치는 물결 속에
당신의 굽이치는 마음도 들끓고
그래도 가끔씩은 고요한 마음을 만나보는
말 없는 물 앞에 발길 멈추어 깊은 뜻을 읽는
역류의 아픈 상처도 그래도 물은 말이 없다
물살에 쫓기는 시대도 잔돌을 만나 소란스럽고
깊은 물은 소리가 없지
시대여 오늘 또 수없이 소리치며 지나갔는가
굽이굽이 수많은 계곡의 물줄기도
맑은 명경은 있는 그대로 모든 걸 되비쳐 주는데
산산이 옷을 입으면 입은 대로 아름다움을 비추지
잎이 저 나목이 된 나무들도
겨울의 쓸쓸한 바람만 가지 사이 드나들고
힘차게 흐르던 물도 얼어
돌덩이 같지만 봄이 오면 졸졸 흐르지
사계절의 낮과 밤 그 어떠한 모습도 남김없이 돌고 돌아
우리와 함께 만나지 않았던가 귀하게도 본래의 모습을,,,
물컵도 비울 줄 안다
말없는 물컵
나는 한 번씩 물 컵에게 자문을 하며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컵은 말하지 않아도
흙에서 왔노라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맡은 일은 잘하고 있었고
끼어져 버림받기 전까지는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전날 밤 잠들기 전 컵에
자리 끼를 채워 머리맡에 두고
컵도 시장기를 채운 것이다
그리고 실내 공간 함께 잠에 들었다
자다가 갈증으로 손을 뻗어
컵의 자리 끼 물을 목에 넘긴다
컵의 담긴 물 나의 입속으로 한줄기 비워
나 역시 채우면 비운다는 오줌 한 줄기 비운다
오늘 하루도 유기체와 무기체가
같은 삶의 운명을 이 시대 살아간다
결국 하나로 분해되겠지만 그렇게
마음이 곧 사리舍利입니다
노송의 그늘에서 작은 솔씨 두 개
대지에 떨어져 자랐다
한 씨앗은 황무지 바위틈
둥지를 틀고 어렵게 자랐고
형체는 비틀어지고 왜소하였지
또 한 씨앗은 평지에 떨어져 어려움 없이
우람한 체구로 멋지게 잘 자라 뽐을 내었고
하루는 우람한 소나무가
이웃 왜소한 소나무에게 말하였지
너는 어찌 그렇게 말라비틀어져
작은 체구로 자랐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꾸하지 않은 작은 소나무
어느 날은 많은 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
우람한 소나무는 힘없이 쓰러졌지
이를 본 작은 소나무는 말하였다
그래 고행의 어려움 없이 자라고
어려움의 준비되지 않으면 어찌 한 치 앞을 보리
작가 소개
지은이 : 보우
퇴수(退受) 보우 시인은 1992년 《시세계》로 등단했다. 속가명이 있으나 법명인 보우(普友)를 시명(詩名)으로 함께 쓰고 있다. 퇴수(退受)는 법호이다. 계간 《사이펀》 문학상운영위원, 부산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실상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실상문학대상, 부산시인협회상(우수)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그 산의 나라』, 『다슬기 산을 오르네』, 『목어는 새벽을 깨우네』, 『눈 없는 목동이 소를 몰다』, 『화살이 꽃이 되어』, 시조집 『설화꽃』, 한시집 『감천에서 매창을 만나다』, 『무명초는 뿌리가 없다』, 장편소설 『영혼의 바람』 등이 있으며 현재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관음정사’ 주지로 있다.
목차
序詩
제1부
얼음 새 꽃
흐르는 물을 보며
인류에 희망을
물컵도 비울 줄 안다
나는 참 행복합니다
내가 주인이다
물방울
단추 달린 가슴
마음이 곧 사리舍利입니다
비누의 미끄러운 충고
아버지의 핏줄
핏줄
전원을 끄며
나를 버려라
설산에서
제2부
내 몸의 염전
하루살이의 기행
행간에 피는 꽃
매창의 일편단심
대나무의 삶
정지의 시간
모과의 서러움
상고대에 핀 편지
비움의 자리
반지
책갈피 속
한 방울의 물이라도
그리운 봄날
현해탄에 묵념
토굴
나는 연애 중
산소 같은 여자
모두가 사랑이더라
제3부
꽃 피운 한강
안타까운 봄
상추의 미소
꽃샘추위
봄은 머물고 있었다
봄날 해 질 무렵
시월을 보내며
소쩍새 울고
여름날 해 질 무렵
작약이 피는 계절
이 가을 풍년이고 싶다
낙엽 쓸기
계절의 길목
가을의 단상
겨울 냇가에서
겨울 봉정암
가을날 해 질 무렵
제4부
매화마름꽃의 희망
행복이란
행복이라
여름밤
누이야
하루살이의 기행
감천동 연가
감천의 밤
감천 아리랑
시화에 옷을 입히다
그 소녀 보고싶다
개혁
인생이란
담쟁이
아침 일출
제5부
사과나무를 보며
성류굴
어설픈 계엄령
혼밥은 외롭지 않네
들꽃
흔들리며 피는 꽃
버스 지나간다
일출
푸른 산
세한歲寒
파도
파도를 보며
바다의 꿈
석류의 열꽃
비누의 미끄러운 충고
허물을 벗으며
쌈밥이라
그 겨울의 일기
해설-세사 괴로움의 법을 풀어 대자유와 깨달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