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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 155호 - 2026.여름 (본책 + 하이픈)
문학과지성사 | 부모님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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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이번 가을호는 ‘문학-연결’을 통해 세계의 구조를 감각하고 재현하는 문학의 시선과 방법을 살펴보고, 문학과 다른 장르, 방법론, 상상력, 현실 구조 사이의 관계를 확장적으로 논한다. 문학과 연극, 소셜 미디어 감각, AI 시대의 기술과 문학, SF시, 퀴어소설, 비평과 타자, 탐정과 배회, 춤과 글쓰기 등을 다룬 아홉 편의 글을 수록했다.



창작란에는 이하석, 김중식, 이영광, 강성은, 김상혁, 이소호, 강상헌, 최재원, 양송이, 추성은의 시와 이기호, 이희주, 현호정의 소설을 실었으며, 최진영의 장편 연재도 이어진다. 리뷰와 지성 코너를 함께 구성하고, 2026년 박화성소설상 수상작 이상권의 「소녀들의 유랑극단」과 심사평, 수상 소감을 수록했다.

  출판사 리뷰

■ 서문 :

가을호를 펴내며

다르게 엮기

‘멧챠 카멜레온’은 다수의 플레이어가 하얀 몸에 색을 칠하여 맵 곳곳에 숨고 소수의 술래가 숨은 플레이어를 찾아 물감 총을 쏘는 온라인 숨바꼭질 게임이다. 이 게임은 2026년 6월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몇 주 사이 생겨난 ‘고인물’들이 기가 막힌 그림 실력으로 술래들의 눈을 피하는 장면이 전 세계 게임 스트리머들을 통해 중계되었다. 플레이어들은 점차 잘 숨고 잘 찾는 것을 넘어 독특하고 기발한 플레이로 더 많은 흥밋거리를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몸을 숨기는 대신 조악한 자동차 모양으로 도망 다니며 숨바꼭질을 추격 게임으로 만들어버리거나, 서로 협동하여 맵에 없는 새로운 물체를 만들어내 술래를 속이고, 밀정을 자처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위치를 누설하며 자기 점수를 높이기도 한다. 숨은 플레이어는 술래의 시야에 들어오면서도 물감 총에 맞지 않을 때 점수를 획득하는데, 이 세팅을 역이용해 숨은 플레이어들이 제 발로 몸을 드러내도록 술래가 숨어 저격수처럼 활동하는 사례도 있다. 재치 있게 위장하는 플레이어를 발견하면 또 숨어보라며 물감 총을 부러 쏘지 않는 것도 술래들의 재미로 여겨진다.
게임 안에는 숨었다 들킨 플레이어가 술래 편이 되는 ‘감염 모드’, 모든 플레이어가 제각각 숨은 후 술래가 되어 서로를 찾는 ‘더블 모드’처럼 역할 관계를 다양화하는 설정이 있다. 기본 맵 역시 숨기 쉽도록 여러 장치와 색감을 뒤섞어놓은 ‘하수도’ 맵과 단순한 구조 속에서 플레이어가 숨기 외의 생존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백룸’ 맵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파티 게임’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면서 기발한 상호작용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플레이어들의 몫이다. 플레이어들은 주어진 세팅 안에서도 새로운 재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로 관계를 거듭 재발명하고, 서로가 서로의 행동과 흥미를 유발하는 신선한 장치가 된다.

관계 맺기를 일차 목적으로 하지 않는 가운데에도 제각각의 놀이를 ‘파티’로 만들고, 그렇게 한 공간에 있는 이들을 ‘파티’로 구성하는 게임의 장은, 이번 계절의 『문학과사회 하이픈』 ‘문
학-연결’을 통해 기획한 글쓰기의 장과 그 모습이 닮아 있다. 올가을에는 세계의 구조를 감각하고 재현하는 문학의 시선과 방법을 살펴보면서, 더불어 문학과 다른 장르, 방법론, 상상력, 현실 구조 사이의 관계를 확장적으로 논해보고자 했다. 지난 두 계절 시대와 죽음이라는 주제로 고민을 응집하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그러한 시대 진단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서 사유와 대화를 확장할 방향을 점검해보는 데 초점을 두었다.
심세연의 「능청스러운 윤리, 글쓰기와 말하기」는 ‘친밀한 유추’라는 표현을 통해 문학과 연극을 연결한다. 두 장르의 속성을 병렬적으로 살펴 유사성을 도출해내는 대신 이 글은 문학의 글쓰기와 연극의 말하기를 매개로 접촉하는 몸들이 기실 언어 자극에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는 자명한 사실 자체를 주목한다. 문학과 연극은 독자 혹은 관객 사이에서 미세한 차이와 미묘한 긴장이 도드라지는 것을 목도하는 가운데에도 ‘뻔뻔하게’ 관계를 생성하려 하며, 바로 그러한 실천으로서 ‘친밀함’의 방법론과 윤리를 생성해내는 것으로 그려진다. 문학과 연극의, 글쓰기와 말하기의 존재론을 윤리의 문제로 개시하거나 소급하는 방식은 익숙한 것이지만, 명확히 ‘윤리’라는 단어를 논점으로 되불러오려는 의지의 무게를 이 글은 진중히 감각하게 한다.
오경진의 「골렘, 전기로 된—동시대 소설에 나타난 소셜 미디어 감각」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전면화되는 관계 및 자기 구성의 방법을 재단과 편집의 측면에서 검토하면서, 파편적 언어 이미지들이 통치성과 연결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인다. 최근 소설들이 그려내는 디지털 ‘중앙신경체계’의 작동 양상과 시스템 속 ‘내면’ 혹은 ‘마음’의 소외 양상을 수집하는 가운데, 항시적 ‘로그인’ 상태의 인류는 ‘골렘’이 되어버린 존재로 호명된다. 특히 아동 학대나 로맨스 스캠 등을 다루는 소설에 초점을 둘 때 이 글이 말하는 골렘의 주된 속성은 윤리적 감각의 상실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진단’은 그 자체로 반성적인 동시에 문학과 비평을 문제적 시스템으로부터 방역된 구역으로 전제하는 효과를 드러내기도 한다. ‘골렘’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의 위치를 상기할 때 어떤 진단과 반성이 가능하게 되는지를 이 글을 매개로 하여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의정의 「불투명한 욕망의 창, 오토피아 스크린—I 시대 기술을 사유하는 문학들의 배치」는 AI 기반 디지털 시대에 대한 비관과 낙관을 동시에 경계하면서, 디스토피아나 유토피아가 아닌 ‘오토피아’의 다양한 장면을 그려내는 소설들과 그 텍스트를 수집 및 재독하는 비평의 수행성을 강조한다. 디지털 기계가 행위자로 등장하는 세계에 대하여 우려와 비판의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 ‘하향식’ 비평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가운데, 이 글은 ‘상향식’ 비평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에 방점을 둔다. ‘호랑이 굴에 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라는 속담처럼 ‘디지털 경제’에 적극적으로 연루됨으로써 개입의 가능성을 만들어내자는 이 글의 제안은,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과 함께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연결망 속에서 그 연결의 방식을 치열하게 관찰하고 분석하며 재조직하는 ‘정신’은 누구에게, 어떻게, 어떤 조건 속에서 주어지는가를, 역시 특정 방향에 관한 질문으로서 검토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성아의 「주춤, 그리고 다음—감각과 언어 사이 SF시 읽기」는 AI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 속에서 전에 없던 경험의 폭과 깊이를 발견함과 더불어 그 경험을 기술할 언어의 지연과 공백을 가시화하는 시도로서 ‘SF시’를 장르화한다. SF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언어의 미래적 형태를 가늠하는 장르이며, 생성과 죽음을 반복하는 언어의 시간성 자체를 가시화하는 방법론으로 규정된다. 언어의 지시 대상이 아니라 지시에 실패하는 방식에 주목하는 이 글의 작업은 ‘인간 고유의 특성’ 역시도 내용이 아니라 언어의 죽음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나아가는 ‘무모함’으로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경계를 재차 확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AI 기반 디지털 기계의 행위자성에 주목하는 시선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행위자성과 문학의 특수한 위치를 강조하는 순환적 구조는 이 글과 더불어 검토해야 할 논점이 된다.
박승일의 「딸깍 이후, 문학을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는 기술과 문학이 연결되어온 방식을 살피기 위해 빛을 활용한 기계 예술이자 낯선 세계를 만나게 하는 문학적 예술로서 영화의 존재론을 탐색한다. 기계공학과 감각 재현 방식이 맞물려 발달해온 영화의 역사는 문학이 기술을 흡수하여 상상의 방법론을 확장하고 기술이 문학을 매개로 삶에 스며온 관계의 역사를 말하는 매개가 된다. 이 관계의 핵심은 서로에게 구체적인 ‘손’을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 유지되어온 ‘거리’로 정리된다. ‘딸깍’ 하는 순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AI의 시대에 그 거리가 거의 사라져버렸음을 우려하면서, 이 글은 의식적으로 문장을 쓰고 읽는 시간적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낯설지 않은 그 주장을 위해 영화 「시네마 천국」을 적극 소환하는 가운데 문학을 외려 현재의 기술과 너무 먼 과거에 배치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아련한 그리움을 넘어 문학과 기술의 동시대성을 논할 방법은 아직 함께해야 할 고민으로 남겨져 있다.
박상현의 「말할 수 없는 그녀—퀴어소설이 ‘엄마’를 말하는 한 방식」은 게이 아들이 엄마에 대해 말하기를 반복하는 이유를 물으면서 하향과 상향, 거리와 개입 같은 연결의 방식을 시도하는 ‘나’들이 끝내 자신을 연장하여 대상을 소외할 뿐 아니라 대상의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두면서 복합적 곤경에 처한다는 사실을 면밀히 짚어낸다. ‘왜’를 추적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어떻게’에 더 몰두하여 소설 텍스트를 분석하는 이 글은 ‘집착’에 가까운 밀착과 돌연 확인되는 거리감 사이를 오가는 실천 자체가 내용 없는 목적일 수 있다는 결론에 닿는다. 연결의 방식을 분석하는 작업에서 핵심은 이편의 언어가 생성될 때 저편에서도 언어가 생성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연결은 하나의 양태로 해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결 자체의 복잡성을 수용하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결론은 온건하고 유보적이지만, 방향과 방법을 단순하게 설명하려는 욕망과의 관계 속에서 여전히 깊은 울림을 가진다.
현재의 「나의 원수는 나의 하나님」은 비평장에서 ‘타자’를 말하는 일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층위를 맴돌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서로를 타자로 맞이하며 관계 맺는 데 필요한 현실적 조건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비평의 대상으로서의 타자보다 먼저 비평장을 구성하는 이들 사이에 존재하거나 부재하는 타자의 위상을 고민해보길 제안하는 가운데, 이 글은 먼저 기꺼운 환대를 가능하지 않게 하는 미시적이고 미묘한 요소들에 대한 답 없는 고려와 조정의 과정을 고백하듯 풀어낸다. 벽을 생성하는 그러한 ‘망상’은 외려 ‘의외의 환대’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일 수도 있다는 전망 속에서, 현재는 결국 머릿속의 언어를 넘어 상대를 대면하고 단순한 인사말을 건네는 장면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그 조우의 장면은 일견 경쾌하리만큼 낙관적으로 그려지지만, 이 글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바는 그 산뜻함이 즉각 깨어질 가능성까지 포함한 채로도 나누는 인사일 것이다. 안부를 나누는 순간 다음의 관계를 어떻게 상상하고 실천해갈 것인가는 이 글의 끝에서 이어 물어야 할 공동의 질문이다.
김예솔비의 「직업으로서의 탐정과 그의 은밀한 낙관들」은 문학과 영화, 비평을 가로지르는 탐정의 형상을 각인하면서 효율성의 법칙을 초과하는 ‘배회’에 관해 말한다. 탐정은 서사 속에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사를 새롭게 구성해가기 위해 걷기 시작하며, ‘시간 늘어뜨리기’를 확고한 원칙으로 실천한다. 김예솔비의 글은 그러한 탐정의 속성이 스스로 선택한 ‘고독’이자 명료한 ‘직업의식’으로 이해될 때 비평과 문학, 영화의 무수한 언어 만들기 행위는 ‘헛짓’인 채로도 지속될 기반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그러한 믿음을 공유하는 지면과 장을 상상한다. 그가 그리는 탐정-작가의 형상은 문학, 영화, 비평의 행위 자체와 행위자를 고전적으로 낭만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헐겁고도 솔직한 비유로서 고독을 관통하여 ‘연결’을 이야기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한다.
오웅진의 「오르케소그라피—말은 아직 거기encore la에, 그러니 춤을 먼저 보낼 수밖에」는 끝내 접촉할 수 없는 채로도 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구부러짐으로 서로를 감각하는 몸들, 중력으로 울렁거리는 공간의 생동을 가늠하면서 글쓰기라는 단어를 넓게 펼친다. 파와 탭, 토슈즈와 탭 슈즈, 발레와 탭댄스를 각각 사전에 등재하듯 구분하고 대조하지만, 동시에 이 글은 전혀 다른 세계를 매개하는 ‘4분의3 박자’의 방법으로 스스로 강조한 구분법을 가뿐히 넘나든다. 그 가운데 꼿꼿함과 휘청거림, 온전함과 상함, 정석과 비정석 같은 정상성의 분류 체계와 더불어 춤과 몸의 관계에 대한 관습적 사고 틀이 어떤 글쓰기의 결과로서 만들어져왔는가를 질문한다. 오웅진이 제안하는 것은 ‘글쓰기’라는 단어를 기록하여 전승하는 행위가 아닌 움직임 자체로서 바라보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글쓰기-춤으로 고유의 리듬을 만드는 이 글은 서로의 박자를 기꺼이 나누는 읽기-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공간을 열기도 한다. ‘문학-연결’에 관한 이 지면의 쓰기들이 무수한 읽기와 만나며 리듬을 변주해갈 가능성은 지면의 마지막 마침표 다음에 새삼 만들어진다.
이상 아홉 편의 글은 하나의 형상을 만들거나 제각각의 그림으로 흩어지지 않으면서 문학, 비평, 인간, 기계, 타자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질문들로 성기게 연결된다. 이 헐거운 모임이 파티의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 많은 관계성과 그 복잡성에 대하여 이야기 나눌 다음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계절에도 창작란은 알록달록 풍성하다. 이하석, 김중식, 이영광, 강성은, 김상혁, 이소호, 강상헌, 최재원, 양송이, 추성은 시인의 시와 이기호, 이희주, 현호정 작가의 소설이 가을로 물드는 나뭇잎처럼 제각각의 빛과 무늬로 계절을 채워주었다. 지난 호부터 장편 연재를 시작한 최진영 작가의 소설도 관심을 이어 읽어주시길 바란다. 리뷰 코너에서는 육호수, 조연정, 최선교, 황유지, 김주원, 양진호, 이수형, 황녹록 평론가가 앞선 계절 출간된 단행본을 다정히 살펴주었다. 더불어 지성 코너에서는 오생근 평론가의 글을 만나볼 수 있다. 「푸코와 보들레르의 현대성」은 푸코가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칸트의 질문을 전유하며 ‘현재성’과 ‘현대성’을 연결한 두 편의 논문을 개괄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비평의 대상이 되었던 보들레르의 ‘댄디즘’으로부터 현대성의 맥락을 재구성해내는 글이다. 현대성을 현재에 깊숙이 몰입함으로써 현재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태도’로 규정하는 이 글의 작업은 예술 혹은 다양한 행위자들에게 ‘의지’로 표상되는 힘과 가능성을 쥐여 주려는 그 자체로 의지적인 행위로서 무게를 가진다. 고전을 매개로 현재를 재의미화하는 끝없는 글쓰기의 과정을 함께 일독해주시기를 권한다.

2026년 박화성소설상 수상작으로 이상권의 「소녀들의 유랑극단」이 선정되었다. 수상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의 마음을 건넨다. 수상작에 대한 심사평과 수상 소감은 본권 지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오디세이」(2026)에서 타인의 섬을 함부로 다니다 쫓겨 나온 선원들은 극심한 풍랑에 맞서 노를 저으며 “포세이돈에게 용서를 빌라”라고 외친다. 신화에서 풍랑은 포세이돈의 분노와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내리는 벌을 의미하지만, 영화에서 오디세우스는 신에게 비는 대신 전쟁과 귀환의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린다. 그 서사 속에서 포세이돈에게 빌라는 선원들의 외침은 삶의 폭력에 적극 연루되어버린 이들이 스스로에게 어떤 단순성을 선사함으로써 연루의 감각을 처리해버리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제우스의 법’을 어기는 일이 신에 대한 죄가 아닌 서로를 향한 악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영화는 신화의 오래된 매듭을 풀어 다시 엮는다. 연결의 방식을 점검하고 새롭게 구상하는 일은 때로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법, 자동화된 사유와 문장의 구조를 그 근본부터 풀어 헤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문학 안의, 문학을 둘러싼, 문학의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연결의 장면들이 언제나 그러한 용기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깊이 바란다.

편집동인 홍성희

시대 진단 너머 문학, 비평, 인간, 기계, 타자, 글쓰기를 질문하는 파티 게임
장르, 상상력, 현실 구조 사이의 관계를 확장적으로 논하기

「능청스러운 윤리, 글쓰기와 말하기」 _심세연
전략으로서의 윤리를 감행한다는 것은 윤리적 무결함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취하려는 이 전략이 수많은 비판점을 안고 있으면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뻔뻔하게 승인한 채, 지금의 자리에서 몸을 부딪쳐 말하기와 글쓰기를 시작하는 일이다. 따라서 문학과 연극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실패를 무릅쓰고 공백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급진적인 무기로 기능한다. 문학이라는 전략은 자신이 올바른 글을 쓰고 있는지, 기준에 맞는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메타적 검토를 멈추고, 뜻대로 장악되지 않는 언어를 기입해나가는 고집이다. 그것은 완전무결한 소통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텍스트라는 흉터를 남김으로써 존재의 공백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한편 연극이라는 전략은 수행될 것이라는 믿음, 어떤 것이 드러나고 작동될 것이라는 믿음이 미끄러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몸과 말을 기입하는 뻔뻔함이다.

「골렘, 전기로 된—동시대 소설에 나타난 소셜 미디어 감각」 _오경진
소셜 미디어에는 우리의 ‘몸’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은 결코 우리의 몸이 될 수 없다. 몸 일부를 디지털신호로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채팅 창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언어 교환은 우리의 의사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의사는 전달되므로 우리는 그것을 쉬이 대화라고 생각해버리지만 실제 목소리로 나누는 의사소통과는 천양지차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의 신체를 연장해주지도, 우리의 진심을 매개해주지도 못한다. 그것은 또 다른 가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소셜 미디어를 우리의 피부, 우리의 성대로 착각한 사람들의 ‘진심’은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소셜 미디어 안에서의 의사소통은 끝도 없이 공허한 메아리의 연속이다. 거기서 진심을 찾는 것은 인간을 모방하는 인공지능을 다시 모방하는 인간의 원본을 찾아내는 일처럼 허망하다.

「불투명한 욕망의 창, 오토피아 스크린—AI 시대 기술을 사유하는 문학들의 배치」 _정의정
적어도 문학 (비평)이 오토피아를 부인하지 않고 이 세계에 대한 결정과 판단을 유보한 채, 욕망과 사랑이 직조되는 장면/스크린, 디지털 경제의 하부 구조의 행위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배치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긴장을 발생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대체로 동시대의 문학작품은 AI 기술과 그로부터 파생하는 각종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인간성을 재탐구하는 데에 목표가 있는 듯하다. 물론 그것은 유의미한 작업이다. 계급 갈등, 젠더 폭력, 민주주의와 극우화, 기후 위기와 인류세의 난제, 후기 금융자본주의 등 플랫폼 기업이 독점하는 빅테크 산업이 얽혀 있는 문제는 사실 지구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은 우리가 조금 더 대범해지기를 제안한다. 그 대범함이란 저만치 앞서가는 기계를 따라가서 칼을 휘두르는 영웅적인 자질과는 거리가 멀다. 기꺼이 기계에게 선두를 내어주고 발전의 트랙을 벗어나 더 멀고 작고 무작위한 점에 서서 지구 전체의 트랙을 바라볼 수 있는 대범함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목차

| 본권 |
가을호를 펴내며


이하석 돌의 설화 외 1편
김중식 태백시 동점동 산 10-1 외 1편
이영광 내버려두어라 외 1편
강성은 우리가 한 모든 결정 외 1편
김상혁 서울 사람 외 1편
이소호 중성자별 외 1편
강상헌 상 외 1편
최재원 하나요 둘이요 깍두기 한 판이요 외 1편
양송이 비록 비건은 아니지만 외 1편
추성은 카니발 외 1편

소설
이기호 우리는 왜 엉망이 되어가는가?—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2
이희주 《TV 쇼!》: 혹은 미류와 희주 이야기
현호정 시작의 마을
최진영 사랑의 기원[장편 연재 2회]

리뷰
육호수 ‘나’라는 불가능, ‘당신’이라는 불가능
—허수경,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난다, 2026)
조연정 우리의 없음에 대하여
—하재연, 『인간이라는 환상처럼』(문학과지성사, 2026)
—박시현, 『사육 공감각』(봄날의책, 2026)
최선교 비껴가는 두 세계
—이자연, 『크런치 모드』(아침달, 2026)
—구윤재, 『미래 아이 뜀틀』(문학과지성사, 2026)
황유지 이끌림과 미끌림, 수행성의 유혹
—김리윤, 『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문학과지성사, 2026)
—김유림, 『탐구』(문학과지성사, 2026)
김주원 돌봄의 온기와 다른 사랑의 증언들
—김혜진, 『달걀의 온기』(창비, 2026)
—최은미, 『다른 사랑』(문학동네, 2026)
양진호 드라이브 마이 카
—백온유, 『약속의 세대』(문학동네, 2026)
—예소연, 『너의 나쁜 무리』(한겨레출판, 2026)
이수형 아우라, 영원함과 덧없음 사이에서
—최수철, 『아우라—표류하는 자들을 위한 성호』(문학과지성사, 2026)
황녹록 내 몸은, 내 언어를 기억해줄까
—정용준, 『겨울통』(은행나무, 2026)
—은희경, 『시간의 감촉』(문학동네, 2026)

지성
오생근 푸코와 보들레르의 현대성

2026년 박화성소설상 발표
이상권 소녀들의 유랑극단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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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픈 | 문학-연결

심세연 능청스러운 윤리, 글쓰기와 말하기
오경진 골렘, 전기로 된—동시대 소설에 나타난 소셜 미디어 감각
정의정 불투명한 욕망의 창, 오토피아 스크린—AI 시대 기술을 사유하는 문학들의 배치
조성아 주춤, 그리고 다음—감각과 언어 사이 SF시 읽기
박승일 딸깍 이후, 문학은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박상현 말할 수 없는 그녀—퀴어소설이 ‘엄마’를 말하는 한 방식
현재 나의 원수는 나의 하나님
김예솔비 직업으로서의 탐정과 그의 은밀한 낙관들
오웅진 오르케소그라피—말은 아직 거기encore la에, 그러니 춤을 먼저 보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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