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이정수 작가의 희곡집인 『사람의 시간』은 세상의 거시적인 것에 집중하기보다 세상을 이루는 사람 이야기에 집중한다. 『사람의 시간』에는 총 3편의 희곡이 수록되었다.
대전이 배경인 「마유는 이레간 포르르 포르르」는 1932년 일제강점기 군시제사공장 노동쟁의를 다뤘다. 「낙조」는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이승만 정권 시절 2인자로 불렸던 이기붕 일가의 욕망으로부터 벌어지는 비극의 역사를 그렸다. 1986년 전두환 정권 시절이 배경인 「하마(河魔)」는 국민대사기극 ‘평화의 댐’ 건설과 모금운동을 소재로 했다.
굵직한 역사의 줄기에서 어쩌면 지나칠 수도 있었던 중앙이 아닌 변방의 이야기, 보통 사람의 이야기가 장면을 이어나간다. 이정수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을 따라가면 몰입하여 작품을 읽어나갈 수 있다.이 사건은 1932년 일제강점기 대전, 일본 거대 자본이 운영하던 누에실 공장에서 발생했습니다. 조선인 여성 노동자들이 민족 차별과 인간 이하의 노동환경에 맞서 궐기했고, 그들의 단호한 단식투쟁은 단 이레(7일) 만에 사측의 항복을 받아내며 요구 조건을 쟁취한 역사적인 승리로 기록됩니다. 노동자의 투쟁이 무기력으로 귀결되던 암울한 시대에, 이것은 기적 같은 ‘만세’였습니다.
그럼. 그때 우리 여공들 손은 다 똑같이 생겼었어. ‘군시제사 훈장’이라고 불렀지. 펄펄 끓는 가마솥에다가 이 맨손을 집어넣어야 했으니까. 고무장갑? 그런 게 어딨어. 맨손으로 휘저어야 고치 실마리가 잡히거든. 처음엔 손이 익어서 빨개지다가, 나중엔 하얗게 불어 터지고, 결국엔 껍질이 벗겨져서 피가 나. 근데 그 피가 나면 또 안 돼. 비단에 피 묻는다고 감독관이 몽둥이질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파도 손을 오므릴 수가 없었어. 피가 나면 몰래 작업복에 쓱 문지르고, 다시 그 끓는 물에 손을 넣었죠.
우리는...이 마유를 닮았어. 열여섯, 열일곱. 꿈틀거리는 생명을 억지로 끓는 물에 집어넣고, 실적이라는 이름의 실을 토해내야 하는 존재들. 그런데 말이야... 가끔 궁금해. 만약 우리가 이 뜨거움을 견디지 않고, 실을 내어주지도 않고... 그저 이 딱딱한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온다면. 그래서 실을 잣는 기계가 아니라, 날개를 가진 나방이 된다면. 세상은... 우리를 뭐라고 부를까?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정수
1991년 대전 출생. 소설을 쓰고 희곡을 짓는다.노동, 인권, 가난 그리고 부조리를 쓴다.2017 제1회 디멘시아 문학상최우수상 수상_ 소설 〈섬〉2020 제28회 전태일문학상소설부문 수상_ 소설 〈어금니〉2021 제13회 대전창작희곡공모 수상_ 희곡 〈하마〉2023 한국극작가협회 한국희곡 명작선 선정_ 희곡 〈파운데이션〉2023 세 번째 희곡열전 이상 전우수예술상 수상 _ 연극 〈이상, 기형, 13〉2026 대산창작기금 희곡부문 선정〈파운데이션〉, 〈여덟 살 우주〉, 〈하마〉, 〈백파〉, 〈어금니〉, 〈재비 : 새, 다시 날다〉, 〈제비다방〉, 〈노고지리는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 〈홍상수 영화처럼〉, 〈반원 안에는 동그라미가 있다〉, 〈알고리즘〉, 〈Blue Lemonade〉, 〈운수 없는 날〉, 〈두번째 가족〉, 〈노고단은 보라색이다〉, 〈운산〉 외 다수의 희곡을 발표했다.
목차
6 마유는 이레간 포르르 포르르
98 낙조 落照
184 하마 河魔
279 작가의 말
282 이정수 희곡집 『사람의 시간』: 역사의 시선,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 「하마」·「낙조」·「마유는 이레간 포르르 포르르」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