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1. “나무마다 사투리가 다 다른 것 알아요?”
: 그녀가 나무에게서 배웠고, 저자가 그녀에게서 발견한 것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들은 말이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무가 말을 한다고? 그 말을 사람이 들을 수 있다고? 그것도 나무마다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쓴다고? 31년 동안 기후위기와 습지, 철새와 해양 생태계를 카메라에 담아 온 그에게 나무는 낯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를 만난 뒤 발견하게 된다. 자신은 나무를 오래 찍었지만, 나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일을 고맙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는 것을.
“카메라 앞에 서 있던 사람은 그녀였지만, 조금씩 벗겨지고 있던 사람은 나였다.”
이 책은 저자가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한 여인, 그가 ‘공주님’이라 부르는 사람과 함께 숲을 걸으며 써 내려간 고백이다. 두 사람이 나눈 약 120시간의 대화, A4 용지 1,300쪽에 이르는 기록에서 건져낸 스물네 편의 이야기는 어느 비범한 인물의 전기에 머물지 않는다. 나무와 인간, 지식과 관념, 소유와 죽음, 두려움과 자유에 관한 질문을 담은 철학적 에세이이자, 한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내면의 기록이다.
2.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공주님’
: 한 가지 이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경이로운 삶올해 88세인 그녀는 조선 왕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과 식물에 마음을 빼앗겼고, 열두세 살 무렵에는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를 만나겠다며 혼자 서울역으로 향했다. 1969년, 단돈 44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패브릭 디자이너로 생계를 유지한 뒤 생물학과 생화학을 공부하고 세포와 암, 감염병 연구에 참여해 에이즈 원인을 규명했다. 1985년 뉴욕 맨해튼 이스트할렘의 폐교를 사들여 연구소를 만들려 했으나 도시 규제로 계획이 좌절되자, 그곳을 주거 공간과 99석 극장으로 바꾸었다. 이후 말기암으로 넉 달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에는 나무를 심을 땅을 찾아 나섰다. 니카라과의 황폐한 목장 약 5천 에이커(축구장 3천여 개 크기)를 사들여, 백만 그루를 목표로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으로 불렸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아무도 모르게 산소나 만들어서, 세상에 보급하고 죽는 것이 좋지 않겠나…….”
이 책은 그녀를 신비로운 현자나 완성된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농담하고, 불평하기도 하며, 화재를 입은 숲의 살림살이를 신경 쓰고,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는 방에 쌓아두었던 빨랫감을 걱정했다는 사실까지 그대로 드러낸다. “내가 죽고 나서 누가 집을 치우다가 그걸 보면 어떡해. 빨래가 산처럼 나올 텐데.”
과학과 죽음, 자연과 우주를 이야기하면서도 삶의 사소하고 구체적인 일들 또한 그 곁에 있다. 과학을 사랑하면서 과학의 오만을 의심하고, 신비한 체험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단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바로 그 구체성과 모순 때문에 그녀의 말은 삶과 동떨어진 교훈이 아니라, 여러 번 다시 살아 본 사람이 건네는 생생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3. 새 붓을 몽당붓으로 만든 아이, 서울역으로 향하다
: 보고 싶은 것은 오래 바라보고, 알고 싶은 것은 직접 찾아 나서다어린 시절, 그녀는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말을 들은 뒤에도 몰래 그리곤 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서랍 속 붓을 꺼내 나흘 동안 그리고 또 그렸다. “얼마나 그려 제꼈는지 붓이 몽당붓이 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책에서 우장춘 박사의 글을 읽었다. 그가 살아 있고 부산 동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학교를 마친 아이는 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나는 집을 도망 나온 것도 아니에요. 우장춘 박사를 만나러 간 거지. 그러니까 가 보자 한 거죠. 아주 심플해요.”
박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먼저 길을 나서는 태도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의 몽당붓은 훗날 뉴욕에서 패브릭 디자인을 하는 도구가 되었고, 꽃과 잎을 오래 바라보며 익힌 눈은 현미경 아래 세포를 들여다보는 눈으로 이어졌다.
4. 단돈 44달러, 그리고 170만 달러의 폐교
: 길이 막힐 때마다 자신이 가진 것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다1969년, 단돈 44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가면 빨간 양탄자를 깔고 나를 받아 줄 줄 알았지.”
그러나 마중 나오기로 한 친구는 없었다. 영어는 통하지 않았고, 거리에서 신문을 덮고 자기도 했다. 낯선 도시에서 그녀를 먼저 먹여 살린 것은 과학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용감해서 용감한 게 아니라, 무식해서 용감하고, 생각을 깊이 안 해서 용감한 거지.”
1985년 겨울, 그녀는 눈 내린 맨해튼 이스트할렘에서 붉은 벽돌 폐교를 발견한다. 가격은 약 170만 달러, 그녀에게는 그 돈이 없었다. “170만 불. 오케이, 사자. 170불도 없는 주제에.”
연 34퍼센트에 달하는 이자를 감수하고 돈을 빌려 건물을 샀지만, 도시 규제에 막혀 원래 계획한 연구소는 열 수 없었다. 그녀는 교실을 주거 공간으로, 지하를 99석 극장으로 바꾸었다.
“다른 데엔 없는 것을 해야지. 여태껏 없는 것을 해야 성공할 수가 있어요.” “실패라는 게 없어요. 가는 과정이지.”
5.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넉 달입니다”
: 죽음을 선고받고, 무덤 대신 숲을 찾아 나서다60대 중반의 어느 겨울, 의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한 4개월 정도 살 겁니다.”
그녀는 왜 자신이냐고 묻지도, 울지도 않았다. “삶이 겨우 이것이었구나 싶었어요. 무엇을 하겠다고 그렇게 허둥대며 살았을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주 조용해졌어요.”
시한부 선고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걱정은 재산이나 업적이 아니라 방 한쪽에 쌓인 빨랫감이었다. 넉 달이 지나도 죽지 않자,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을 나무를 심을 땅을 찾아 나섰다. 프랑스와 하와이, 코스타리카를 거쳐 니카라과의 황폐한 목장에 이르렀다. “흰 호수가 딱 보이는데, ‘이거다’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
어린 시절 들은, 마음에 드는 땅에 용변을 보면 자기 땅이 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무 뒤에서 소변을 본 뒤 500달러를 계약금으로 걸었다.
6. 백만 그루, 아무도 모르게 만드는 산소
: 백만 그루를 향해, 받은 숨을 세상에 돌려주는 고요한 사랑그녀가 사들인 땅은 약 5천 에이커. 나무를 심는 일보다 심은 나무를 살아남게 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가뭄과 화재, 소와 야생동물이 어린 나무를 앗아 갔다. 백 그루를 심어도 스무 그루밖에 남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녀가 나무를 심기 시작한 최초의 이유는 산소였다. “아무도 모르는 산소를, 제일 필요한 것을 만들어 보자.” “산소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얼마를 냈는지 계산할 필요도 없고, 계속해서 나오고, everybody needs it.” “내가 미워해도 산소를 주니까 다행이다.”
죽어 가던 묘목이 다시 뿌리를 내린 날, 그녀는 산에서 혼자 춤을 추었다. “살아 줘서 고마웠어.” “받은 걸 갚고 가야죠. 얼마를 받았는지 I don‘t know. 조금 이자 붙여서 드려야 될 거 아니에요.”
그녀에게 숲은 서로 무관한 생명이 모인 곳이 아니라, 나무와 새, 물과 바람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는 세계다. “분명히 다 다른 소리인데, 그게 전체가 하모니가 일어나서 막 웅성웅성웅성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이 체험을 객관적 사실이라 강요하지 않는다. “가끔가다 어린애 같은 몽상 속에 있는 거지.”
7. 빨간 사과는 없다
: 이미 안다고 믿는 순간, 눈앞의 사람과 세계는 보이지 않기 시작한다“빛이 닿으면 그 빨간 사과가 하얗게 보여요. 그런데 나는 한 번도 하얗게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빨갛게 봤지.” 사람은 사과를 보는 순간 ‘사과는 둥글고 빨갛다’는 관념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 사과는 빛과 위치에 따라 흰색과 노란색, 검붉은 그늘을 함께 품는다. “관념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을 문맹으로 만드는지 몰라요. 볼 수 없게 하고 느끼지 못하게 해요.”
진재운 감독 역시 처음에는 그녀에게서 ‘숲의 현자’다운 말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처음 나는 그녀에게서 ‘숲의 현자’다운 말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함께 밥을 먹고, 말을 타고, 농담과 불평을 주고받고, 갑자기 바뀌는 관심을 따라가면서 내가 붙인 이름들이 자꾸 흔들렸다.”
과학자였던 그녀는 지식의 위험을 안다.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이 마약과 같아요.” “나는 어느 하나밖에 몰라요. 거기에는 수천 개의 다른 변인이 있는데, 오직 하나만 내게 보이는 거예요.”
“지식이라는 말은 지혜라는 말과 달라요.”
8. 첫눈길을 걷는 삶, 잠시 맡아 돌보는 삶
: 비교와 후회, 소유와 공명심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살아가는 법“첫눈길을 걷는 것 같은 인생을 살아라.” “남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내 삶에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발자국만 따라가게 돼요. 그러면 아름다움을 다 잃어버려요.”
“후회라는 건 뒤를 돌아보는 거잖아. 운전하는데 계속 뒤를 보면 금세 사고 나요.”
니카라과의 숲은 법적으로 그녀의 소유지만, 그녀는 자신을 영원한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 땅은 내 땅이 아니에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잠깐 머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지.” “내 자신도 내 것이 없어요.”
그녀는 니카라과에서 죽으면 이불로 몸을 말아 묻고 그 위에 세이바 나무를, 뉴욕에서 죽으면 참나무를 심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 나무는 내 육신을 먹고 살겠지. 나는 이미 죽었는데, 이 피지컬은 내가 아니에요. 흙이나 마찬가지지.”
9. 그녀가 나무를 구했는가, 나무가 그녀를 구했는가
: 이름을 남기지 않고 다른 생명이 살아갈 자리를 남기는 삶저자 진재운 감독은 처음에는 한 사람이 숲을 구하는 이야기를 촬영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숲을 구한다고 생각했다. 촬영이 길어질수록 생각은 반대로 움직였다. 숲이 그녀를 살게 한 것은 아닐까.”
오래된 레드우드 앞에서 그녀는 자신을 지탱해 온 이름과 자부심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가식이 많은 인간이 나무 앞에 서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어요.” “나는 나무를 키우면서 사랑도 배웠고, 주는 것도 배웠고, 받는 것도 배웠어요.”
책의 후반, 저자는 고백한다. “오랫동안 그녀를 촬영했지만, 끝내 그녀를 알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보다 다른 생명이 살아갈 숲을 남기려 했다.”

“나무는 가식이 없어요. 나무는 언제나 진실을 이야기해요. 가식이 많은 인간이 나무 앞에 서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여러 이름이 따라다녔다. 왕가의 후손이었고, 과학자였으며, 예술가였다. 뉴욕에서는 연구를 하고 극장을 만들었으며, 여러 채의 건물을 소유하기도 했다. 사람의 세계에서 그런 이름은 한 사람을 설명한다. 때로는 자신을 지켜 주고, 다른 사람과 구별해 주는 울타리가 된다. 그러나 레드우드는 그녀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빛이 닿으면 그 빨간 사과가 하얗게 보여요. 그런데 나는 한 번도 하얗게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빨갛게 봤지.”
그 뒤로 붉은 사과는 사라졌다. 사과에 붉은색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사과는 빨갛다’는 한 문장으로는 지금 이 빛 속에 놓인 사과를 다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름과 색을 아는 순간 우리는 대상을 빨리 알아보지만, 바로 그 앎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자세히 보지 않는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며 깨달았다고 했다.
“관념이라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대상을 얼마나 변질시키는가를 그림을 그리면서 찾는 거예요. 관념으로 보지 않으면 거기에는 수도 없는 색깔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