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1592년(임진년)부터 1598년(무술년)까지 충무공 이순신이 전장에서 몸소 체험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왜군과의 치열한 접전, 긴박했던 전장의 분위기,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략과 전술 등 전란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또한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흔들리는 조정의 분위기와 그 와중에 전국토를 휩쓴 전란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모습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판사 리뷰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전장의 분위기를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한 사료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임했으며,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았던 조선 수군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탄환에 맞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그는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속에 위대한 영웅으로 남아 있다.
1592년(임진년)부터 1598년(무술년)까지 그가 전장에서 몸소 체험한 일들을 기록한 《난중일기》는 왜군과의 치열한 접전, 긴박했던 전장의 분위기, 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략과 전술 등 전란의 상황을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또한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흔들리는 조정의 분위기와 그 와중에 전국토를 휩쓴 전란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모습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영웅이기 이전에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갈등이 담긴 기록
한편 《난중일기》에는 전란의 기록 외에 인간 이순신의 내면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어, 성웅으로 추앙받아 온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난중일기》에서 볼 수 있는 이순신의 모습은 일반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강철 같은 체력과 정신력을 겸비한 무장이었을 것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거의 매일 과로와 육체적 고통으로 시달리거나, 밤새 식은땀을 흘리는 날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간밤에 꾼 꿈을 풀이하거나 자주 점을 치기도 했다. 전장에서 늘 침착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적인 심정을 기록한 일기에서는 인간으로서 쉽사리 물리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의 그늘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이순신의 자상하고 애틋한 면모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늘 멀리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틈날 때마다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효성 지극한 아들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오열하는 대목에서는 그 역시 한 국가의 장수이기 전에 뜨거운 부정을 가진 아버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부하의 죽음에 애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고생하는 병사들을 위해 술잔치를 벌이는 등 군졸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는 모습에서 그의 넓은 아량과 자애로운 인품을 알 수 있다.
이순신은 뛰어난 공적을 쌓은 대가로 오히려 모함을 당하거나 좌천당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정치적으로 라이벌 관계에 있던 원균과 갈등을 빚으면서 조정대신들의 미움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순신은 원균을 ‘흉인’‘흉악한 자’라고 거침없이 칭하며 좋지 않은 감정을 자주 드러낸다. 이처럼 사적이고 감정적인 부분까지 솔직하게 기록한 《난중일기》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순신이 직접 쓴 친필 초고본을 바탕으로 하되, 초고본에 빠져 있는 부분은 1795년(정조 19)에 간행된 전서본을 참고하여 한글로 쉽게 풀어쓴 것이다. 보충 설명이 필요한 곳에는 꼼꼼히 주를 달고, 다양한 자료들을 추가하여 《난중일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책의 말미에는 《난중일기》 속에 그려진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분석한 편저자의 해설을 수록해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쟁에 관한 기록들
-임진왜란-
해질 무렵에 영남 우수사 원균의 통지문이 왔는데 “왜선 90여 척이 와서 부산 앞 절영도에 대었다”고 하였다. 이와 함께 경상 좌수사 박홍의 공문이 왔는데 “왜선 350여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즉각 임금께 장계를 올리고 순찰사와 병사, 전라 우수사 이억기에게도 공문을 보냈다. 영남 관찰사의 공문도 왔는데 동일한 내용이었다.
:: 임진년(1592, 선조25년) 4월 15일
밤 열 시쯤 영남 우수사 원균의 공문이 왔는데, “부산진이 이미 함락되었다”고 했다.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곧 임금께 장계를 올리고 삼도에도 공문을 보냈다.
:: 임진년(1592, 선조25년) 4월 16일
-명량해전-
맑음.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적은 수의 수군으로는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하였고, 또 이르되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고 엄격히 말했다.
:: 정유년(1597, 선조30년) 9월 15일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순신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임진왜란 당시 백성과 바다를 지켜낸 삼도수군통제사다. 기적을 바라는 대신, 최악의 조건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최고의 지휘관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전선을 정비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발생 가능한 전황에 체계적으로 대비한 관리자이기도 했다.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래 최초의 해전인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사천, 한산도, 명량, 노량해전에 이르기까지 주요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는 단순히 전투에만 임한 장수가 아니라, 전황과 수군 통제에 관한 철저한 기록이자 보고서인 『임진장초(壬辰狀啓)』를 남겼고, 매일의 진중 기록인 『난중일기(亂中日記)』를 통해 전장의 지형, 조류, 날씨, 백성들의 삶까지 정밀하게 관찰하고 남긴 지휘관이었다.나아가 관습적인 명분이나 상부의 명령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전장의 조류와 날씨, 군량 등 객관적인 사실을 기준으로 삼아 행동했다. 외부의 지원이 끊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도 직접 농사를 짓는 둔전을 일구어 스스로 군량을 조달하는 자립을 실천했으며, 군율과 책임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무너진 조직을 다시 전쟁이 가능한 상태로 재건해냈다. 이처럼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을 맞선 명량대첩과 마지막 순간까지 지휘 체계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노량해전의 결실은 철저한 준비의 결과물이었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탓하기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에 집중했던 그의 삶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묵직한 교훈을 전한다.
목차
임진년(1592년) 17
계사년(1593년) 41
갑오년(1594년) 91
을미년(1595년) 161
병신년(1596년) 211
정유년 1(1597년) 273
정유년 2(1597년) 323
무술년(1598년) 355
부록 363
-- 이순신 참전 주요 해전 정리 364
--《난중일기》에 대하여 372
-- 임진왜란 이전의 이순신 376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 380
--《난중일기》 체제와 국내 주요 사건 일지 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