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라는 책제목에 다시금 눈물짓게 만드는 이 책은, 신상협 시인이 세상에 남긴 주옥같은 시들을 정성껏 엮어낸 유고시집이다. 이미 하늘의 천사가 되었을 시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며, 추모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세상에 바친다. 단단한 삶의 굴레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준다.
출판사 리뷰
영혼의 산책 같은 한 사람의 삶
영혼의 산책 같은 한 사람의 삶이 숨 쉬는 글입니다. 아직 못다 한 그의 말과 생각이 허공 중에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하늘을 건너가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던 그가 그 먼 길을 떠나갔습니다. 스스로 위안으로 삼던 생전의 글들이 살아남아 우리를 숙연케 합니다.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늘 묵상했을 그의 모습이 선합니다. 신상협 시인은 목숨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이 시대를 걱정했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평안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나라 위한 생각도 많았습니다. 별을 노래하며 별을 꿈꾸는 자만이 하늘을 볼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무겁고 힘들었던 삶이었지만 행복하다는 아내의 말을 가슴에 새겼던 사람, 서로 존중하며 살았던 부부였습니다. 아들딸을 위한 간절한 기도 속에는 그리워하는 마음조차 숨기고, 살아있는 자신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가 글 속에서 가장 많이 불러온 단어는 ‘그리움’이었습니다. 단단하고 두려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만의 ‘방생법’ 시에서는 꿈도 사랑도 버리고 빈 몸으로 그리움만 남겨두기로 하였습니다. 알베르 까뮈의 말처럼 하루하루를 눈물 나게 성실하게 살았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던 사람으로서 그가 떠난 자리는 아직도 커다란 블랙홀로 남아있습니다. 살아있음이 죄가 될 수 있어 오늘을 늘 갈고 닦았던, 눈부신 그의 기도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은 앞으로도 더욱 잘 살아낼 것입니다. 돈독했던 글벗들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의 영혼은 오래도록 살아있을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라는 한 구절에 다시 눈물지으며, 우리 모두 믿음의 마음을 얹어봅니다. 이미 천사이길 신상협 님 영생하소서. 주옥같은 당신의 글들을 엮어 영전에 바칩니다.
---글방문우 권미자 시인
나의 걸음은 느리다
남들이 빠르게 달아나거나
뜀걸음으로 앞질러 갈 때도
가는 숨 짚어 가며 천천히 따라간다
저만치 앞서가는 것들에 대한 예의!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거창하게 ‘느림의 미학’이니 하는
미사여구는 더더욱 아니다
손금 사이로 한 줄기 강물이 흐르고
저만치 앞서가는 것들의 뒷모습 사라져도
그래도 살아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안녕! 앞서가는 이여. 안녕!
그대 도착하는 곳에 금빛 무지개가 뜬다면
커다란 하트를 만들어 다오
그대 발자국 잊지 않고 짚어 가리니
차오르는 숨결 몰아쉬거나,
뛰어오르는 맥박 짚어 내리고
나는, 느린 걸음 아껴 가며 걸어간다.
---「느린 걸음」 전문
시간의 강물에 떠내려가는 그대
미술관 가는 길이 사치인 줄 알고 살았다
그렇게 사치인 줄 알고 살았지만
호사를 누리고 싶은 이제
신발끈 고쳐 매고 길을 나선다
지하철을 내려 가파른 계단 숨차게 오르고
느린 걸음을 질질 끌고 나서면
제 붉은빛에 취하여 뒤채는 가로수들,
귀에 꽂은 이어폰은 음악을 쏟아 내고
낙엽 풀풀 날리는 모퉁이 거리는 황홀하고 쓸쓸하다
젠장, 유치찬란한 나이는 지났군
버석거리는 낙엽을 걷어차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대 앞으로
길은 곧고 나무들은 끝없이 도열해 섰다
터벅터벅 걷는 어깨 위로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는
미술관 가는 길은 왜 이리 멀고 힘든 건지
마음이 가난한 자여
저 성곽 같은 건물은 너무나 견고하고 거대하구나
대형 현수막이 깃발처럼 걸려 있는 미술관
포스터 그림은 화려하고 풍경은 아득하여라
알 수 없는 화가의 전시회가 열리는 미술관 앞마당
펄럭이는 걸개그림 앞으로
몇몇 여학생이 짝을 지어 깔깔거리고
게걸음을 걷는 그대는
전시회는 보지 않고 미술관만 바라다본다
마음이 가난한 자여
팜플렛 몇 개 집어 들고 돌아나오며
햇살의 빗금에 갇히는 이제
그 마음에 그림 한 점 걸어 놓고 싶다.
---「미술관 가는 길」 전문
모든 것이 헛헛해진다
자꾸만 헛헛해지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어깨
바람결을 만지고 싶거나
반짝이는 나뭇잎이 그리워지거나
내일을 기다리는 일이 아득해지고
오늘은 하루살이같이 느껴지면서,
그러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음을 깨닫게 되고
그러면 무엇을 비워 내고 기다려야 하나
입 안이 헐어서 따끔거리고
쓴침이 고이는 마른 입시울,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요 라면서
습관처럼 성당에 달려가서
십자고상을 올려다본다
참 보잘것없음으로 나를 낮추는
기도밖에 없으므로
기도로써 담백해지기로 하면서
이렇게 오늘을 시작하기로 한다
오늘을 만나기로 한다.
---「기도의 서序」 전문
목차
추모사 10
Ⅰ
기도의 서序 20
느린 걸음 21
미술관 가는 길 22
다알리아 24
수다의 꽃 25
인상착의에 대하여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28
천문대 가는 길 30
동굴 속 그녀 31
라스푸티차 32
덧셈 뺄셈 34
그리운 날들 36
네잎클로버 38
무언가 나를 흔들 때 39
이팝나무 그늘 아래 40
부드러운 손 41
노모老母에게 핸드폰을 42
빈집 43
이 시대를 얘기함 44
보리누름을 아시나요? 46
꽃들은 일찍 피고 47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명상 48
진흙의 계절 50
불로동 고분 52
Ⅱ
누구나 떠나고 싶어한다 56
세월 유감 58
‘유붕자 원방래’하니 60
담 안 풍경 62
대프리카 64
사랑 자물쇠 65
아침에 멈추기 66
우리 시대의 증명사진 68
꽃진 자리 69
풀아 내 풀아 70
꽃잎을 쓸며 71
낙엽은 적이다 72
풀이 자란다 73
전화번호를 지우며 74
욕하기 좋은 날 76
코로나 바이러스 1 78
코로나 바이러스 2 80
코로나 바이러스 3 82
코로나 바이러스 4 84
동네 골목마다 86
흰죽 한 그릇 88
흩날리는 생각 89
딸에게 길을 묻는다 90
아라홍련 92
Ⅲ
조춘早春 96
고요의 집 97
가톨릭 군위 묘원 98
고려장 100
사문진 나루 102
마음에서 고향을 잃다 103
친애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씨 104
싱글라이프 ‘나 혼자’ 106
행복론 108
문양역 풍경 110
식칼을 갈며 112
장미의 축제 114
낮은 집 115
군자란君子蘭 116
매화꽃 117
나의 기도 118
플랫폼에서 119
아파트 경매 120
므흣한 표정 122
트라우마에 대한 아내의 자세 123
지랄나무 124
한가위만 같아라 126
버려짐에 대하여 128
믿음의 방정식 130
수녀원에 있는 딸에게 131
Ⅳ
비둘기에 대한 우화寓話 136
판공성사 138
신용카드에 관한 자술서 140
쌈박한 말씀 142
마늘을 까다가 144
아내라 부르고 연민이라 적는다 146
아름다움을 저장하는 나쁜 버릇 148
읽으라는 성경은 안 읽고 149
효도폰에 대하여 150
어색한 생일 152
아이가 돌아왔다 154
다만 미끼를 확 물어 버린 것이고 156
산티아고 순례길 158
노년의 아버지가 어느 날 160
아름다운 삶 162
사월 초파일에 163
옛 시벗 164
35주년 166
동창들 만난 날 168
미생을 보며 169
나의 신부에게 170
아파트먼트 172
겨울 꽃가게 173
가을 채집 174
Ⅴ
묵주 팔찌 178
방생법放生法 1 179
방생법放生法 2 180
방생법放生法 3 182
방생법放生法 4 184
환상 변주 185
호출 부호 186
수원성水原城에서 188
사랑은 알루미늄 캔과 같이 189
여름 서랍 190
마원성지 192
길 위의 예수 최양업 194
포도밭의 노래 196
햇살 맑은 날 198
부럼 깨물기 200
한 개의 나뭇잎 201
촛불처럼 202
여우목 204
신앙 고백비 206
잠수교潛水橋 1 207
잠수교潛水橋 2 208
푸른 초대장 209
바이러스, 명동, 여자 210
Ⅵ
모래무지 214
슬픈 나라 216
아, 황석두 루카 218
디스코를 위하여 220
지평地坪에 저물며 222
눈 그늘 224
돌 속에 갇힌 여자 225
신나무골 성지 226
엄마 228
야광시계 230
한티 성지 가는 길 231
중고 서점 알라딘에서 232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234
계면조界面調 사랑 1 236
계면조界面調 사랑 2 237
心≠心 238
꿈꾸는 나무 240
눈 241
셈법 242
바람 부는 날 244
환타지아로 가는 협궤선 245
오남구, 꽃의 문답법 246
아침 소주 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