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프롤로그
처음 요양병원(療養病院) 의사가 된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규모가 작은 요양병원들이 많았고, 대부분 입원환자 수가 150여 명 정도였다. 내가 출근한 요양병원 역시 그 정도 규모였지만 최근에 신축(新築)하여 병원 환경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하지만 환자들 대부분은 치매, 파킨슨병, 노쇠 등 말기(末期) 상태였고, 인지기능(認知機能)은 거의 소실되고 하루 종일 침대에서 생활하는 소위 와상(臥床) 환자가 90% 정도였다. 그때는 요즘과 달리 하나의 병실에 8명에서 많게는 12명이 입원해 있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환기(換氣) 시설이 잘되어 있더라도 어느 한 병실에서 발생한 특유의 냄새는 병동 복도를 돌아서 이웃 병실마저 온통 휘감고, 환자들은 그 속에서 하루 종일 비몽사몽(非夢似夢)의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지금은 법(法) 규정이 강화되어 요양병원은 1개 병실에 입원환자 6명을 초과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더 줄여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1개 병실에 환자 4명 이하는 되어야 그나마 인간다운 생활 보장(保障)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은 될 것이다. 누군들 좋은 시설, 넓은 병실, 한 병실에 적은 환자가 있을 수 있는 병원을 찾고 싶지 않겠는가. 요즘처럼 요양병원들이 다른 병원과의 차별화(差別化)를 위해 호텔처럼 병원 시설을 꾸미거나 규모를 대형화(大型化)하고 병실환경을 개선하며 나름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의료재정(醫療財政)의 문제와 병원 운영 수익과 직결된 탓에, 그런 시도와 개선들이 쉽지 않은 게 2026년 오늘날 대한민국 요양병원의 현실이다.
‘노인(老人)’은 법이나 통계 기준으로 65세 이상을 말하는데 ‘노년(老年)’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관점의 노화 과정의 일면을 말하며, ‘노령(老齡)’은 노년의 상태와 특징을 표현하는 용어다. 따라서 ‘노인인구’의 모든 법적 대상은 나이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노인인구가 2025년을 기점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고, 2024년을 지나면서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이미 진입하였다.
노인인구가 많아질수록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드는데,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인구 비율인 ‘명목 노인부양비’는 2026년 거의 50 정도이지만 ‘실질 노인부양비’는 이미 100을 넘어서서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인구 1명을 떠안는 늙은 사회가 된 것이다. 물론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인인구의 경제활동 기간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양질(良質)의 노인 일자리 부족으로 노인인구의 적정한 생활 유지를 위한 경제적인 수입은 여전히 모자라는 형편이고, 그 부족한 부분을 전부 국가가 메워야 한다는 건국가 재정의 한계 때문에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노인 세대는 노인 세대 대로, 자식 세대는 그들대로 살길을 찾아야 하지만 아직은 부모를 잘 돌보고 봉양(奉養)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 나름의 유교(儒敎) 문화적인 측면 때문에 자식들이 전적인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생산활동에 전념해야 하는 자식 세대의 부모 봉양 문제는 심각한 사회현상을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늙고 병든 부모의 봉양은 죽을 때까지 치료하고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가정에서 하지 못하는 간병과 돌봄을 요양병원 입원이라는 현실로 대신하게 되었다.
평균수명 증가로 경제력이 적은 늙은이가 더 늙은 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소위 ‘노노간병(老老看病)’ 역시 또 다른 사회문제로 대두하였다.
‘돌봄’과 ‘간병’은 다르다. 돌봄은 의식주를 포함한 일상생활 보조가 주된 것이라면, 간병은 질병 치료의 보조적인 관점이다. 흔히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많이 혼동하는데, 요양원은 돌봄 측면이 대부분이라면 요양병원은 간병 측면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다행히 2026년 3월부터 정부가 ‘통합돌봄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함에 따라 늙고 병든 부모 봉양의 어려움이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통합돌봄제도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살던 집과 지역에서 의료·요양·돌봄·주거 등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사회 중심의 사회서비스 정책이다. 특히 의료·요양 통합돌봄은 65세 이상 노인과 65세 미만 심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며, 읍·면·동 통합돌봄창구에서 신청·연계가 진행되며, 돌봄과 간병을 통합해서 병원과 지역사회, 가정이 모두 참여하는 제도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으로 예견되지만 우리 사회가 사회적 합의로 노인인구에 대한 한 걸음 나아간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그 책임을 다하려는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얼마 전 유투브(YouTube)에서 99세 할아버지께서 매일 아침 집을 나서 밭일을 손수 하고 있는 동영상을 보았다. 큰 질병도 없고 너무도 뚜렷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스스로 두 발로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 났다. 별다른 식사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식이 차려준 밥과 국 그리고 반찬으로 소식(小食)하며, 골고루 전부 다 드시고는 깨끗이 빈 그릇들을 직접 설거지까지 하셨다. 매일 달콤한 기분만큼 밭일과 노동을 하는 게 일상(日常)이자 장수(長壽)의 비결이었다.
‘오래 사는 건 축복(祝福)이 아니라 재앙(災殃)’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그 할아버지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여겼다. 물론 유전적으로 장수인자(長壽因子)를 갖고 태어나셨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할아버지께서 장수하신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현직(現職) 요양병원 의사인 나도 언젠가는 요양병원의 노인 환자들과 다를 바 없는 말년(末年)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자각(自覺)과 더불어 지금도 종착역(終着驛)을 향해 마지막 기차를 타고 가는 환자들과 그동안 스쳐 간 영혼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존재였기 때문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늙고, 병들고, 마침내 삶을 마감하는 게 천리(天理)며, 그것이 오복(五福)중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이다.
“모든 것이 인연(因緣)이다.”
2026년 따뜻한 봄날 진료실에서
이 종 기
목차
프롤로그
1부. 생로(生老)
누가 입원하고 언제 퇴원하나
누가 누굴 간병하나
약은 밥이 아니다
먹을 게 없다
불편한 진실
웨이팅게일
진짜 자식
나는 여기 살기 싫다
가족이 없어요
딸이 최고야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착한 아내와 병든 남편
니들이 내 마음을 알아
낙상 이야기
옴 이야기
사이좋게 지내세요
불면의 밤
돌아갈 집이 없다
우주복을 아시나요
어버이날 풍경
천생연분
긴 병에도 효자는 있다
요양원으로 갑니다
삼총사
갑질
의사 불신
2부. 병사(病死)
희귀병의 애환
언제까지 해야 하나
아!, 아버지
가자 엄마
어떤 환자 여의사
형제 이야기
안타까운 죽음
그만 살란다
제발 그냥 놔두라
살고 있나, 살려져 있나
밤새 안녕
아무도 모른다
DNR의 변심
콧줄 이야기
연명의료결정법의 함정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