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1960년 대 말 지산면 금노마을.
부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고 기운이 없었다. 차림새는 남루했으며 요 며칠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듯 보였다. 마당에는 네 마리의 개가 있었는데, 두 마리는 따분한 듯 햇볕 아래 누워 있었고, 한 마리는 노부부의 대화를 경청하듯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두 마리는 백구였고, 한 마리는 황구였다. 황구는 고슴도치처럼 털이 가닥가닥 서 있고 주둥이는 길었으며 귀는 컸고 다리는 쭉 뻗어 대쪽 같았다. 백구 한 마리는 일 년이 덜 된 수컷이었으나, 귀 사이 간격이 넓고 태도가 자못 대범했다. 황구의 피를 이어받은 새끼였다. 나머지 한 마리는 체구는 작지만 몸이 길고, 소박한 체격에 눈매는 매서웠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선량함이 감돌았다. 이 백구는 털이 길었으며 한쪽 귀 끝은 잘려나간 흔적이 있었다. 세 마리 모두 갈빗대가 드러날 정도로 말랐으나, 셋 다 눈초리가 매서웠고 눈알은 봄 햇살이 비추는 시냇물처럼 맑고 형형했다.
마루 밑에는 백구 암컷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강아지 세 마리를 품고 있었다. 세 마리 모두 백구였다. 백구만 태어난 것으로 보아 강아지 아비가 백구였던 모양이다. 강아지들은 어미 품에 달라붙어 젖을 빨아 먹고 있었다.
이 집은 진도에서도 사냥개와 사냥꾼으로 유명한 ‘동학네’였다.
동학은 여전히 산짐승을 잡아 팔며 연명하는, 진도에 남은 유일한 직업 사냥꾼이었다. 사냥은 그에게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라 치열한 생업이었다. 동학의 부친은 일제강점기 그 유명했던 사냥꾼 이동기였고, 조부로부터 사냥술을 익혔으며 자질과 능력이 우수한 개의 얼개를 읽어 내는 법을 배웠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동학은 진도 제일의 사냥 전문가가 되었고, 가장 우수한 진돗개들을 길러냈다.
동학은 좋은 개를 보는 눈과 사냥개를 부리는 능력만큼은 뛰어났지만, 농업이나 어업에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한때 그와 산을 누비던 사냥꾼들은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은 벌이가 신통치 않아 섬을 떠나거나 새로운 직업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였다.
이제 진도에 남은 사냥꾼은 동학네뿐이었다. 동학도 주변의 권유를 받아 다른 길로 들어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학은 대를 이어온 가업을 차마 저버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예사롭지 않았다. 애견이다 뭐다 해서 서양에서 만든 개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판국에 토종개는 잡종 개가 될 것이 뻔했고, 자신마저 다른 직업을 선택해 버린다면, 진돗개는 설 자리를 잃어 영영 사라져버릴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조상 대대로 개들 덕에 먹고 살아온 처지에 가업을 등지는 것은, 조상님은 물론 평생의 동지인 개들에 대한 신의를 배반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한 외고집 탓에 동학은 가난과 사냥꾼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비록 겉으로 내색한 적은 없었으나, 동학은 진돗개와 함께 산을 누비는 것을 천직으로, 이 땅에서 난 개들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을 마지막 소명으로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 1권
작가 소개
지은이 : 장석윤
전) 진돗개 바로알기 운동본부 번식 연구 및 관리소장전) 진돗개 심사위원저서: 『진돗개 이야기』(또바기 출판 미디어)장편소설: 『그리움을 향한 몸짓 1』(청어출판사)작가는 지난 24년간 천연기념물 53호 진돗개의 고유한 형질과 생태 환경을 보존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현재는 그릇된 반려동물 문화에 반성을 촉구하며, 진본 매거진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멸종 위기에 직면한 민족견 보존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최고의 사냥개들 8
제2부 새싹이 돋아나고 96
제3부 개 꼴 152
제4부 특명 202
제5부 나 살자고 너를 보낸다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