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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날개가 없다
사이펀 | 부모님 | 202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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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2024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한 제송희 시인의 첫 시집 『거미는 날개가 없다』가 사이펀현대시인선 29번으로 출간됐다. 등단 2년 차라는 이력이 무색할 만큼, 시집에는 오랜 시간 퇴고를 거쳐 다듬어진 언어와 삶의 깊이가 응축돼 있다.

유년의 쓰라린 기억과 애증의 흔적, 떠나간 사람과 곁에 남은 존재들에 대한 감정이 눅진한 고독의 정서로 펼쳐진다. 시인은 삶의 비극적인 인식과 체험을 밀도 높은 언어로 육화하며, 현대시의 또 다른 결을 보여 준다.

정훈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을 두고 “마음의 형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언어의 뭉치”라고 평했다. 제송희 시인은 “시를 만난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이라고 말하며, 첫 시집의 설렘과 함께 다음 시집을 향한 다짐을 전한다.

  출판사 리뷰

지난 2024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한 제송희 시인의 첫 시집 『거미는 날개가 없다』(사이펀)가 사이펀현대시인선 29번으로 발간됐다. 사이펀출판사에서 내보내는 배재경 시집에 이은 두 번째 출간물이다. 제송희 시인의 이번 첫 시집은 등단 2년 차 신인의 시집이라는 선입견을 가볍게 뛰어 넘긴다. 그녀의 작품에 담긴 문학성에서 물리적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만큼 첫 시집의 설레임만큼 퇴고와 퇴고를 거치며 완성형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작품마다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늦은 시집만큼 세월에 녹아든 시인의 육성이다. 삶의 깊은 부분을 경륜과 체험으로 육화시킨 그녀의 언어는 현대시의 또 다른 집약체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러한 제송희 시인의 문학적 성과를 정훈 문학평론가는 “제송희의 시편을 이루는 기반이 생의 비극적인 인식과 아울러 슬픔이 눅진한 고독이라면 이번 시집은 그러한 마음의 형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언어의 뭉치”라면서 “유년의 쓰라린 기억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애증의 그늘을 남기고 떠났거나 함께 보내는 사람에 대한 시적 형상화를 통해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세계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 한편 시인은 “시를 만난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이지만 다음 시집을 위한 마음을 다잡는다”며 첫 시집 『거미는 날개가 없다』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비의 종점

비 묻어온다
건물 사이로 비의 숲이 걸어 나온다

꽃 빛이 움츠러들고
빗방울이 꽃 내를 잡아 가두면
청개구리를 낳고 싶었지

퍼붓는 비를 바라보다
넌지시 손 내밀어 등 토닥이면
어여쁜 짐승들 날개를 턴다

적막은 시야를 넘어 흩어진다
버릇없는 바람이
가지를 훑고 지나갔네

빗소리에 놀란 고라니
낮잠 깨어도 꿈속이다

처마 밑에서 빗물의 간격을 재던
아이는 아직 거기 서 있고
꿈을 향해 비상하는 물구나무들

막 당도하는 물결이 헉헉대는 소용돌이

방파제가 완강히 파도를 막아서는,

울음의 벼랑으로, 종종걸음치는 비였다
운김을 따라 진득한 해무가 감도는 거기
비의 종점이 있을 거였다

어느 서점에서


거기 들어섰을 때,
마른기침 소리가 들렸다
빽빽한 책들이 고행 중이다

수염깨나 만지작거리다
서책을 꺼내 읽던 양반들
몹시 수상한 시절을 만나
책으로 변신했다

그들은 독심술도 펼치는데
책이 한꺼번에 팔려나간 날이
술책을 쓴 그날이다

그 얼굴은 근엄하거나 발랄하다
진지한 표정일수록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날 데려가요 날 뽑아 줘요

낮은 진열대엔
겹겹이 포갠 무게가 저릿하고
손이 닿지 않는 선반에는
해탈한 책들도 보인다
저들은 변방에 있어도
자기 세계를 잃지 않았다

목이 긴
몇 권을 골라 데려간다

거미는 날개가 없다


나비들은 뭐든 앞질러 갔다 그들 무리 중 잘난 쟁이는 호랑나비였다 그는 나비 날기 대회에서도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눈만 뜨면 나비, 그들 세계를 기웃거리며 그와의 독대를 노렸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석진 곳에서 여린 벌레나 낚아채는 거미라는 정체성에 신물이 난다 나는 일찍이 거미들의 한살이에 대해 불만을 품어 왔다 거미들은 진정 어리석다 에오라지 거미줄에만 매달리다 마지막엔 마른 풀잎처럼 나뒹굴고 말 것이다 이 우라질, 가깝고도 먼 경계를 뚫어야 한다 끝없이 나풀거리는 나비 세계를 훔쳐보다 목이 달아날 뻔한 적도 있었지 이참에 저들처럼 생을 즐길 수 있다면 저 나비 세계에 꼭 편입해야 해 흠, 이적이라던가, 뭐라던가 있다던데


  작가 소개

지은이 : 제송희
1956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2024년 《사이펀》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현재 사이펀문학회, 양산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제1부

호박꽃
비의 종점
거미는 날개가 없다
302호 여자
작달비 내리는 날
어느 서점에서
이기적인 집
사월은 혹독했다
구멍 보감
나도 후견인이 있다
2인용 식탁
물통이 있는 풍경
새벽
이런 아집
빅 마우스
즐거운 부활

제2부


난 외롭지 않아요
회색 편들기
가방끈이 긴 청소부
단봉 낙타에게
새벽달
사거리 신호등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느 흐린 날
모과나무 집 그는
등짝
증후군
들목에 서다
벵골
슬픔을 이기는 법

제3부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동행
개안
단감
머나먼 서정
당근 마켓 24시
백로
증상
바람의 집
손맛
더위 그리고 가을
물어볼 것을
불을 놓으러 간다
회전의자

제4부


앨리베이터는 착해
옛 애인을 위한 방화
천수답
산길 스케치
그 애, 도연이
짝사랑
감옥
고개를 넘어
그늘을 기다리며
그런 때가 있었다
천사 김밥
부채
내면의 시간
안시리움
핀잔
조력자

해설 - 젖은 마음이 머무는 세계, 그 정처 없는 생의 고독에 대하여 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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