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이 오늘의 교회와 세계에서 성서의 내용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평생 탐구해 온 신학을 풀어놓는다. 그의 오랜 제자이자 동료 목회자인 클로버 로이터 빌과 수년에 걸쳐 나눈 대화를 엮은 생전 마지막 대담집이다.
소명의 뿌리와 학문 여정에서부터 성서 해석, 예수와 삼위일체, 전례와 기도, 안식일, 돈과 소유, 이웃 사랑까지 평생 천착해 온 신학적 관심사를 아우른다. 다른 저술에서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브루그만의 신학과 사상을 한눈에 조망하도록 돕는다.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신앙의 언어를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지, 교회는 지배 문화에 맞서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를 성서 본문을 통해 살펴본다. 생의 끝에서 삶을 돌아보며 쓴 마지막 글에는 ‘나날의 충만함’과 ‘하느님의 셈법’에 관한 브루그만의 고백이 담겼다.
출판사 리뷰
구약학의 거장 월터 브루그만, 평생의 신학을 한 자리에 풀어놓다.
신학, 신앙 언어는 종종 삶의 언어와 멀어진다. 익숙한 단어일수록 손쉽게 무뎌지고, 교회 안에서조차 '하느님', '그리스도', '신앙', '은총', '성서'와 같은 말들은 설명되지 않은 채 공중에 붕 뜨기 일쑤다. 월터 브루그만은 이 간극을 평생 좁히려 애쓴 학자였다. 그는 단순히 구약학자가 아니었다. '오늘의 교회, 오늘의 세계에서 성서에 담긴 내용이 어떠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정직하게 응답하고 교회를 향해 그 길에 동참하라고 촉구하던 현대의 예언자이자 신학자였다.
『월터 브루그만의 고백』은 그의 오랜 제자이자 동료 목회자인 클로버 로이터 빌이 월터 브루그만과 나눈 대화를 엮은 대담집이며 생전에 남긴 마지막 대담집이기도 하다. 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이 대화에서 브루그만은 소명의 뿌리와 학문 여정에서부터 성서 해석, 예수와 삼위일체, 전례와 기도, 안식일, 돈과 소유, 이웃 사랑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평생 천착해 온 신학적 관심사 전반을 종횡무진 아우른다. 오랜 우정이 빚어낸 친밀함 가운데 브루그만은 다른 저술에서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고, 그 결과 이 책은 그동안 출간된 어떤 브루그만 책과 다른, 내밀하고 따뜻하며 도전적인 대담집이자 고백록, 브루그만이라는 방대한 세계로 들어가는 친절한 안내서가 되었다.
브루그만은 이 책에서 오늘날 교회가 마주한 핵심 물음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성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신앙의 언어는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가. 전례는 어떻게 제국의 이념에 맞서는 대항문화 행위가 되는가.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서가 말하는 하느님의 정의는 오늘날 우리 경제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 교회이기를 그치는가. 그의 답변은 언제나 성서 본문으로 돌아간다. 시편의 탄원, 호세아의 격정, 예레미야의 예언, 루가복음서의 비유 까지. 브루그만은 이 본문들이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향해 살아 말을 걸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말 걸기는 때로 불편하고, 도발적이며, 현재적이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글은 생의 끝을 마주한 노학자가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쓴 고백과 같다. 생산성과 성취를 측정하는 세상의 셈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 "나날의 충만함"과 "하느님의 셈법"을 다룬 이 글은 브루그만 신학의 정수를 개인적이고도 아름답게 담아낸 글임과 동시에 현대의 예언자가 세상에 남기는 유언과도 같다. 브루그만은 이 책에서 말한다. 자신은 여전히 성서가 살아 있다고 믿으며, 그 본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난다고. 교회가 지배 문화를 흉내 내는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대안 세계를 선포하는 공동체로 살아남기를 꿈꾼다고. 이 고백을 공유하는 이들(성서를 진지하게 읽고 싶지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교회 신앙과 세상 현실 사이에서 씨름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브루그만의 사상을 한눈에 조망하고 싶은 독자에게, 그리고 신앙의 언어를 되찾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깊은 도움과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다.
클로버 빌과 대화를 나누고 티머시 빌이 갈무리한 이 책은 내 학문 여정의 궤적을 돌아보기에 더없이 알맞은 형식을 지니고 있다. 대담이라는 형식이 가장 적절한 이유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클로버와 나는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결국 두 사람 모두를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통찰로 이끌었다. 이처럼 마주 보며 소통하는 방식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 성서를 이끄는 상상력이 숨 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상호작용이 필수라는 점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서 본문은 저자가 특정한 삶의 자리에서,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하시는 하느님과 동행하며 상상력을 발휘해 빚어낸 결실이다. 이를테면 나는 『구약신학』Theology of the Old Testament에서 구약의 신앙이란 어느 한쪽으로 쉽사리 수렴되지 않는, 핵심 증언core testimony과 이에 맞서는 증언counter testimony이 부딪치며 일으키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시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는 찬양과 탄식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종종 한 편의 시 안에서 두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신앙의 뿌리에는 모세가 야훼와 “얼굴을 마주하고”(출애 33:11) 소통한 서사가 있다. 출애굽기 32장 11~14절이나 민수기 14장 13~19절에서 모세가 야훼에게 항변하며 뜻을 돌이키시라고 설득하는 대목은 그 좋은 예다. 시편을 지나 욥기에 이르면, 야훼께서는 당신을 향해 날 선 말을 던지며 격렬하게 따진 욥이 옳은 말을 했다고 인정하신다(욥기 42:7~8 참조).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굽실거리는 태도를 거부하고, 정직하고 격렬하게 주고받는 대화를 기쁘게 받아들이신다. 따라서 우리의 신학 활동 역시 이러한 대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대화가 아니라면 결코 드러날 수 없는 새로운 통찰이 피어나도록,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클로버와 나눈 대화 덕분에 나는 내 신학 여정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 대화가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하기를 바란다.
1970년대 초에는 칼 바르트Karl Barth의 『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s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솔직히 내용 대부분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울림은 컸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신학 탐구가 얼마나 엄중하고 거대한 과업인지 깨닫게 해주었지요. 『교회 교의학』 초반부에서 그가 “우리는 언제나 현실에서 출발해 가능성으로 나아간다”고 선언한 대목을 읽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근대 세계는 가능성에서 출발하려 함으로써 이 순서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었다고 준엄하게 지적한 것이지요. 믹스 교수는 제가 해방신학 저작과 마르크스주의 비평 관련 저작을 읽는 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런 분야에 완전히 무지했습니다. 이어서 제임스 콘James Cone의 책들을 읽었고, 여성주의 비평과 여성 신학, 성 소수자 신학을 접했습니다. 나중에는 팀과 토드가 소개해 준 비판 이론critical theory을 공부했지요. 이제는 탈식민주의 비평이 저 같은 백인 남성 모두에게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정교한 이론으로 매끄럽게 다듬어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성서가 선포하는 수많은 진실을 직관으로 꿰뚫어 본다고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이 떠오르는 학문 흐름을 늘 한발 늦게 쫓으며 부단히 새로 배워야 하는 처지이지요. 저는 평생 많은 책을 읽어 왔기에 새로운 담론을 마주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파고드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제 신학 세계가 완전히 끊기거나 급변한 적은 없지만, 길을 걷는 동안 시야가 트이며 도약하는 순간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하느님을 다른 어딘가에서 찾으려고 하는 순간, 어긋남과 거룩함, 신실함으로 가득한 이 하느님께서 맺으시는, 기존의 틀을 깨뜨리는 관계성은 손상되고 맙니다. 제가 보기에 이 하느님은 ‘대본을 따라’on script 움직이십니다. 성서라는 대본이야말로 하느님의 본성에 맞는 거처입니다. 이러한 견해가 급진적인 이유는 성서 자체가 급진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차원에서든, 우리가 찬미하고 싶어 하는 하느님의 성품(거룩함, 자비, 긍휼, 그 무엇이든)은 우리가 흔히 ‘계시’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입니다. 모종의 통로를 거쳐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셈이지요. 우리가 세례를 받고 성서가 설계한 현실을 따르기로 서약할 때 우리는 이 세계가 기꺼이 몸담아 살아갈 수 있는 온전하고 참된 세계임을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바로 그 세계, 즉 이 본문 안에서 자비와 정의와 올바름, 곧 하느님의 신실함이 가장 근본적으로 펼쳐집니다. 이를테면 출애굽 서사는 언제든 재연(이를테면 유대교 유월절 만찬)되어야 하는 일종의 대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 악보와 유사하지요.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마다 연주자들은 그 악보라는 대본을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해 냅니다. 대본은 연주자들에게 온갖 제약을 가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자유를 허락하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처럼 제약과 자유가 미묘한 균형을 이루는 세계를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말이지요.
작가 소개
지은이 : 월터 브루그만
미국의 구약학자이자 그리스도연합교회 목사. 엘름허스트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A.B., 에덴 신학교에서 신학 학사 학위B.D.를 받았으며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Th.D.를,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1961년 에덴 신학교 구약학 교수로 부임하여 1986년까지 재직했으며 이후 컬럼비아 신학교 구약학 교수로 부임하여 2003년 은퇴할 때까지 재직했으며 이후 명예 교수로 활동했다. 미국 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회장(1990)을 역임했으며 에덴 신학교를 비롯한 여덟 곳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설교 학술지 「설교자를 위한 저널」Journal for Preachers 창간 편집자로 40년 이상 편집 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그리스도연합교회 목사직을 내려놓지는 않았으나 생애 후반에는 성공회 평신도로 지냈다. 2005년 자택에서 92세로 세상을 떠났다.20세기 이후 영미권을 대표하는 구약학자로 평가받으며 100권 이상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남겼다. 대표작인 『예언자적 상상력』The Prophetic Imagination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선정한 '20세기를 형성한 100권의 책'에 꼽혔으며 주저인 『구약신학』Theology of the Old Testament은 구약 전체에 수사 비평을 체계적으로 적용한 구약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또한 성서의 예언자들이 대안 사회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는 논지를 설득력 있게 전개해 예언서 연구를 역사 문헌에서 현대 교회와 사회를 위한 살아있는 메시지로 전환시켜 구약학, 신학, 윤리학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구약학자 엘런 F. 데이비스는 그를 기리며 "성직자와 평신도를 막론하고 신앙 안에서 구약을 계속 읽게 만든 학자"라 평했다.주요 저서로 『예언자적 상상력』, 『안식일은 저항이다』(이상 복 있는 사람), 『구약신학』(기독교문서선교회), 현대성서주석 중 『창세기』, 『사무엘상·하』(이상 한국장로교출판사),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IVP), 『마침내 시인이 온다』(성서유니온), 『예언자의 기도』(비아) 등이 있다.
지은이 : 클로버 로이터 빌
목차
편집자 서문
월터 브루그만의 서문
클로버 로이터 빌의 서문
1. 월터 브루그만이 월터 브루그만이 되기까지
소명의 뿌리
- 월터 브루그만을 형성한 초기 만남들
아름다운 섭리의 궤적
- 배움의 여정
행운과 우연
- 명성을 얻기까지
충분히 좋은 하느님
- 삶과 신학 작업의 관계
2. 성서에 관하여
여러 겹의 목소리, 서로 다른 목소리
- 성서는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낸다
히브리 성서인가, 구약성서인가?
-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문자에 충실한,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 ‘문자주의’를 다르게 상상하기
본문이 일하는 방식
- 수사로 읽는 성서
최종 해석이라는 유혹
- 함께 읽는 성서 공부
송영의 상상력
- 창조, 과학, 진리
비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비평 이후로 나아가기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책
- 무엇이 성서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어긋남, 모순, 과장, 역설
- 유대 해석 방식을 회복하기 /
말이 세계를 짓는다
- 상상의 행위
안에서, 함께, 그리고 아래에서
- 본문 속에 깃든 하느님
성마른 하느님
- 길들여지지 않는 거룩함
회복 중인 하느님
- 성서와 폭력
3. 예수와 선포
예수라는 걸림돌
- 생명의 못자리가 된 죽음
공식을 넘어 이야기로
- 교리의 덧칠을 걷어내며
대안 세계를 선포하기
- 삶과 죽음이 걸린 성직자의 과업
상상력의 씨앗을 심는 일
- 체제를 뒤흔드는 설교
슬픔과 전체주의
- 고통과 분노의 고백
하느님의 하느님다움
- 죄의 신학
4. 교회의 실천
전례 대 제국
- 예배의 요소들
상실의 행렬
- 성찬이 주는 권능
관계의 두터움
- 공적 기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 하느님의 눈길 안에서, 개인 기도
안식일은 저항이다
- 벽돌 할당량을 거부하는 삶
같은 편에 서서
- 기술·군사·소비주의라는 공동의 위협 앞에서
착취의 경제
- 출애굽기에서 오늘날까지의 돈과 소유
우리는 언제 교회이기를 그치는가
- 신경, 제도, 그리고 상호 서약
시는 투표하지 않는다
- 신앙의 언어를 되찾기 위하여
부고를 쓰며
- 정의, 교회 개혁, 그리고 넘치는 은총
나가며 _ 하느님의 셈법
인물 색인 및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