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하나의 이름 뒤에 존재했던 영혼의 오케스트라페르난두 페소아는 평생에 걸쳐 수십 개의 독립된 자아, 곧 헤테로님을 창조하여 각각의 이름으로 시와 산문을 남긴 시인입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연기자(fingidor)", 스스로를 연기해 또 다른 존재가 되는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그가 남긴 헤테로님은 단순한 필명이 아니라 저마다 출생과 성격과 시론을 지닌 또 다른 자아들이었고, 이는 20세기 문학이 가진 가장 독특한 사건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조르지 레트리아의 글은 이 난해하고도 매혹적인 세계를 아이의 이야기처럼 풀어냅니다. 시인들이 사는 상자, 밤마다 깨어나는 목소리들, 그리고 자기 안에서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소년. 그는 어려운 문학 이론이나 연보를 설명하는 대신, 페소아가 세상을 상상했던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소년 안에 시인이 살고, 그 시인 안에 또 다른 시인이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페소아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나친 감상을 덜어낸 담백한 문장은 그의 고독이 어떻게 창작의 원천이 되었는지를 조용히 보여 줍니다.
조용한 리스본의 밤과 수많은 목소리가 깃든 상자 속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책 주앙 파젠다의 그림은 이 책의 또 다른 목소리입니다. 모자와 외투, 검은 실루엣, 절제된 색감. 여럿이면서 하나인 인물을 그는 군중이자 단독자로 그려 냅니다. 같은 사람이 여러 거리를 동시에 걸어가는 듯한 화면은 페소아라는 사람 자체를 시각화한 것입니다. 절제된 색감과 단순한 형태는 리스본의 골목과 항구, 그리고 그가 평생 품고 살았던 고독과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이 책이 가닿으려는 곳은 독자의 깊은 내면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이름으로 살아가지만, 사실은 하나의 얼굴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기뻐하는 나와 불안한 나, 현실적인 나와 꿈꾸는 나. 페소아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했고, 평생에 걸쳐 그것을 시로 써 내려갔습니다. 그림책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어쩌면 한 권의 시집에 더 가깝습니다.
‘달콤함은 거의 없지만 공기와 거품으로 빚어지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책 속 페소아의 시에 대한 묘사는, 이 책 자체에 대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한 권의 그림책이면서도 한 권의 시집처럼 읽히는 책어떤 사람은 평생 하나의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한 사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를 썼지만, 단지 시만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 안에서 태어난 또 다른 시인들에게 이름을 주고, 성격을 주고, 목소리를 주었습니다. 알베르투, 리카르두, 알바루, 베르나르두. 그들은 단순한 필명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서로 다른 시를 쓰는 독립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페소아를 읽는다는 것은 한 명의 시인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시인들이 모여 사는 하나의 세계를 만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페소아의 바로 그 특별한 세계를 상상력과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 그림책입니다. 페소아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정리하거나 업적을 설명하는 대신 한 소년이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목소리를 발견하는 순간을 따라갑니다. 상자 속에 잠든 시인들, 밤마다 깨어나는 이름들, 리스본의 골목과 카페, 창가에 앉아 글을 쓰는 고독한 예술가의 모습이 한 편의 시처럼 펼쳐집니다.
조르지 레트리아의 글은 페소아의 삶이 품고 있던 감각을 불러냅니다. 한 사람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살고, 그 사람 안에 또 다른 시인이 살아가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담담한 문장으로 들려줍니다. 책 속의 페소아는 위대한 문인이기 이전에 상상력이 풍부한 한 소년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거울 앞에서 여러 사람이 되고, 자신 안에서 태어난 목소리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밤이 되면 그들을 상자 속에 재워 둡니다. 현실과 상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이 장면들은 페소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가장 시적인 방법이 되어 줍니다.
주앙 파젠다의 그림 역시 인상적입니다. 강렬한 붉은색과 깊은 푸른색, 검은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절제된 화면은 리스본의 밤과 페소아의 내면을 동시에 떠올리게 합니다. 창문, 모자, 안경, 상자, 바다와 같은 상징들은 반복되며 한 편의 시각적 운율을 만들어 냅니다. 독자는 그 상징 속에서 페소아의 세계를 천천히 거닐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얼굴로 살아갑니다.
직장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누군가에게 보여 주는 나.
페소아는 오래전 이미 그 질문을 품고 있었고, 평생 그 답을 시로 써 내려갔습니다.
이 책은 그림책의 형식을 빌려 한 예술가의 내면을 그려 낸 시적인 초상이자, 상상력과 창작의 비밀을 들려주는 예술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