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인생 밑바닥에서 탄생한 위대한 문학. 막심 고리키는 어린 시절부터 넝마주이와 짐꾼, 보조요리사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어머니》와 《밑바닥》을 통해 러시아 민중의 삶과 자유를 향한 몸부림,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담아낸 그의 대표작을 함께 만난다.
1907년 발표한 《어머니》는 1차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사회 밑바닥의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그려 세계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발표 당시 강한 검열과 탄압을 받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출판되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고리키를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1902년 발표한 희곡 《밑바닥》은 도시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삶과 절망,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그린 고리키의 대표 희곡이다. 체호프와의 인연으로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뒤 오늘날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인간을 향한 애정과 현실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인간상을 보여주는 고리키 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출판사 리뷰
인간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는 격한 몸부림
좌절과 방황 대혼란에 빠진 러시아 민중을 향한 무한한 애정
인생 밑바닥에서 탄생한 위대한 문학!
막심 고리키의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이다. 고리키는 한때 밑바닥 생활을 겪은 사람으로서, 그 시대 전 세계 문학가들 가운데 거의 유일한 경력을 지닌 작가이다. 그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아홉 살 때부터 넝마주이가 되었고, 곧 집을 떠나 구둣방 보조, 디자이너 수습생, 성상화가 보조, 증기선 보조요리사, 제과점 점원, 짐꾼, 변호사 사무실 서기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이어갔다. 그 비참하고 쓰라린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해, ‘쓰라림’이라는 뜻의 ‘고리키’를 필명으로 삼았다.
어렸을 적부터 인생 밑바닥에서의 처절한 경험은 자전적 작품 가운데 첫 번째인 《어린 시절》에 거의 그대로 담겨 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고리키라는 작가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문학 불굴의 유산! 《어머니》
1905년 페테르부르크에서 1차 러시아혁명(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난다. 고리키는 전부터 민중과 정부 측이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양측을 중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으며, 사건 이후에는 유혈사태를 일으킨 정부에 격렬히 항의했다. 이 시기 고리키 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이 탄생한다. 바로 1907년 발표한 《어머니》이다. 진보적 노동자의 전형을 마치 눈앞에 펼치듯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모범으로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 불굴의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제정 러시아의 날로 더해가는 압제 아래에서 겪어야 했던 인생의 잔인함과 쓰라림, 부조리를 묘사하고 있다. 바로 이 소설로써 러시아 민중은 사회 밑바닥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닌, 자신이 직접 시대의 한 축을 맡으며 역사를 만들어 가는 능동적인 당당한 인간으로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존엄을 위한 몸부림, 노동자의 필독서!
《어머니》는 발표되자마자 문단과 학계, 민중의 격렬한 찬사를 받았으며 특히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민 사이에서는 필독서가 되다시피 했다. 말 그대로 노동자의 존엄성을 빛낸 소설이며 그들의 자유 쟁취 선언이라 할만 했다. 이 작품은 보통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일컬어지지만, 이러한 명칭만으로는 이념적 소설이면서도 선진문학이 되기를 거부했던 고리키의 재능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정치적 목표가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이따금 튀어나오는 유머, 잊을 수 없는 생생한 등장인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감동적이고 때로는 가슴 아프게 당대 러시아에 존재했던 정치적, 문화적 양극단을 조명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는 문학적‧역사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발표 무렵에는 매우 큰 탄압을 받았다. 고리키는 ‘피의 일요일 사건’에 연루되어 외국 망명길에 올라야 했으며 1906년 미국에 머무는 동안 이 작품을 거의 완성했다. 러시아에서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출판했다. 1907년에야 러시아에서도 발표되었는데 곧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제1부가 연재되던 잡지는 강제 폐간되었고, 제2부는 매우 심한 검열로 곳곳이 삭제되어 제대로 읽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온전한 작품이 러시아에서 출간되는 일은 불가능했고, 민중은 외국에서 몰래 들여온 것을 멋대로 번역한 불법 해적판을 돌려 읽으며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러시아에서는 그러했지만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으로 고리키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문학적 혁명가이자 시대의 등불로 추앙받게 된다. 그는 이 작품을 펴냄으로써 예술 창작 정점을 찍었으며, 그의 문학은 물론 러시아 문학 전체를 통틀어 일대 전환점을 이루어냈다.
고리키 대표 희곡! 《밑바닥》
막심 고리키는 소설작품 말고도 희곡작품도 썼으며, 첫 작품이 1901년 발표한 《소시민들》이다. 그 뒤로 1933년까지 모두 희곡작품 17편을 썼으나 1902년 발표한 《밑바닥》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밑바닥》은 말 그대로 밑바닥 삶을 그린 작품이다. 도시의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1897년에 발표한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라는 작품을 희곡으로 다시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한때는 인간이었던’ 사람들 말고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사람들이라고 부르기에는 아까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모두 밑바닥의 주민인 것은 분명하며, 그들이 연주하는 교향악은 겉으로는 시끄럽고 목소리가 크지만, 밑바닥에 흐르는 색조는 절망과 체념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펼쳐지는 이야기는 많지만 줄거리가 없고, 나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주인공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밑바닥》에서는 매 장마다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살아갈 의욕조차 잃어버린 부랑자들의 삶은 죽음이나 다를 바 없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각성. 밑바닥 인생들의 눈과 귀가 열린다. 이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인간적‧도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 근대극 가운데 평판과 질량 모두 체호프의 작품과 견줄 수 있는 명작인 《밑바닥》은 체호프와의 인연 덕분에 1902년 러시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연되었으며, 그 뒤로 오늘날까지 많은 나라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고리키의 철저한 인간 긍정주의
고리키는 몸소 부랑자 생활을 겪어 보았으므로, 어느 작가보다도 그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더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또한 현실은 어두울망정 그들의 자유로운 세계를 낭만적이고 자연적으로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고리키 초기 작품에서 볼 수 개인주의‧낭만주의 경향은 이후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주제로 발전한다. 고리키는 거의 종교적인 믿음에 가까울 만큼 이 믿음을 중요시 여겼다. 이 점은 그가 애정을 갖고 묘사한 부랑자의 삶에 잘 드러난다. 거친 삶과 인간을 향한 사랑이 곧 고리키 문학의 생명줄이며 처음이자 끝이다. 비뚤어진 사회 속에서 살아가지만 밝고 힘찬 인간성을 잃지 않는 인물을 생생하고 낭만적인 문체로 그려나갔다. 그러면서도 그 묘사는 터무니없지 않고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성을 가지며, 그로 말미암아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을 극복하려 하는 불굴의 인간상을 만들어 낸다. 이렇듯 고리키 작품에는 거친 현실에 맞서며 올곧게 살아가려는 긍정적인 인간상과 함께 끝내 온갖 모순과 역경을 극복해 내는 인간의 승리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큰 울림과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리라.
어머니의 마음은 두 갈래로 흔들렸다.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비애를 그
토록 잘 이해하고 있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감스럽게도 아들이 자신의 젊음을 희생하면서 모두에게 익숙해진 세상의 불합리에 혼자 맞서려 한다는 사실에 걱정이 앞섰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렇다고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사람들은 너를 짓밟을 거야, 넌 파멸하게 되고.’
“오, 하느님. 네 좋을 대로 살아라. 딱 하나만 부탁하마. 사람들과 얘기할 때 함부로 나서지 말거라. 무엇보다 사람을 조심해야 해. 다들 서로를 증오하고 있단다. 욕심과 질투로 살아가고들 있지. 네가 만일 그 사람들이 사는 걸 들추어서 판결하려고 하면, 아마 널 미워하며 사냥개처럼 물어 죽이려 들지도 몰라.”
“파벨, 거기 네게도 신앙심이 있어! 신앙심은 머리가 아니고 심장이야. 심장 속에서는 그 외에는 그 무엇이라도 자라날 수 없지.”
“인류를 해방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이성뿐.” 파벨이 말했다.
“이성은 힘을 주지 않네! 가슴이 힘을 주는 거야. 머리가 아니란 말이야. 알겠나?” 르이빈이 힘차게 반박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막심 고리키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자란 고리키는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자란 고리키는 여섯 살 때 글을 배우고, 1877년 1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외할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열 살이 되던 해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1881년 ‘선’이라는 배에서 접시닦이를 하던 그는 글을 모르는 주방장 스무리에게 책을 읽어 주며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고골, 네크라소프, 뒤마, 발자크, 플로베르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힘든 노동과 미래에 대한 절망을 느낀 그는 1887년 19살이 되던 해에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로 인해 만성적인 폐결핵을 앓게 된다.그 후 고리키는 코롤렌코의 서기로 일하게 되는데, 이때 자연과학, 니체 이론 등을 공부하고, 1891년 러시아를 여행하며 칼류즈니를 만나 그의 권고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892년 9월,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며 등단한다. <마카르 추드라> 이후, 여러 단편들을 계속해서 발표하던 고리키는 여러 신문에 평론이나 칼럼을 쓰며 정치 문제를 다루게 된다. 1898년에는 단편 20편과 수필을 모은 책 ≪수필 및 단편집≫을 출간해 문학적 명성을 얻었으나, 지속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해 경찰의 감시를 받는다.고리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가열되는 학생 데모와 파업을 봉쇄하기 위해 학생들을 탄압하는 정부를 비파해 세 번째로 수감된다. 톨스토이는 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고리키는 감옥에서 <바다제비의 노래>를 발표해, 이 작품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혁명의 노래처럼 불리게 된다. 1902년 ≪소시민≫과 ≪밑바닥에서≫가 초연되고, 1904년 ≪별장족들≫을 저술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05년 1차 혁명을 목격하고 차르 정부를 비난하고 결국 유형을 당한다. 1906년에는 차르 정부의 러시아 차관을 차단하는 활동을 해 러시아로의 귀국이 허용되지 않아 1913년까지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정착한다. 1913년 로모소노프 가문 300주년 기념 특사로 사면을 받은 고리키는 페테르부르크로 가 문학·정치 활동을 계속하다가 다시 외국으로 나가기를 권유받게 되며, 1913년 영구 귀국 할 때까지 이탈리아의 소렌토에 살게 된다.다난하고도 복잡한 삶을 살아 온 막심 고리키는 1936년 6월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에서 68세의 일기로 자신의 생애를 마쳤다. 이틀 후 스탈린 등의 국가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국장으로 그의 장례가 치러졌고, 그의 시신은 크레믈 벽에 안장되었다.
목차
어머니
1부… 11
2부… 219
밑바닥
나오는 사람들
1막… 455
2막… 484
3막… 507
4막… 533
막심 고리키의 생애와 문학
막심 고리키 생애와 문학… 553
막심 고리키 연보… 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