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인은 대개 세상을 두 번 바라본다. 한 번은 눈으로 바라보고, 또 한 번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눈으로 본 풍경은 누구에게나 비슷하지만, 마음으로 본 풍경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꽃을 보아도 어떤 이는 아름다움을 보고, 어떤 이는 슬픔을 보고, 또 어떤 이는 삶의 이치를 본다. 김도향 시인의 시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 바다와 돌멩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오래 삶의 진실을 품고 있는 스승이다.
출판사 리뷰
시인은 대개 세상을 두 번 바라본다. 한 번은 눈으로 바라보고, 또 한 번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눈으로 본 풍경은 누구에게나 비슷하지만, 마음으로 본 풍경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꽃을 보아도 어떤 이는 아름다움을 보고, 어떤 이는 슬픔을 보고, 또 어떤 이는 삶의 이치를 본다. 김도향 시인의 시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 바다와 돌멩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오래 삶의 진실을 품고 있는 스승이다.
시집의 첫머리에 놓인 「코스모스」는 이러한 시인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혼자인 듯 떼 지어
서러운 듯 명랑하게
넘어질 듯 굿굿하게
무릎 꺾는 바람 따라 휘청
허리에 감기는 노을 따라 흔들
빈 몸인 듯 가득 담긴
실눈 뜨는 놀란 씨앗들
결코 헛된 시간 아니었네
―「코스모스」 부분
코스모스는 단순한 가을꽃이 아니다. 시인은 꽃의 형상을 통해 인간 삶의 역설을 읽어낸다. 혼자이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 서러우면서도 명랑해야 하는 존재, 쓰러질 듯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존재. 그것은 꽃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모습이다.
김도향의 자연시는 자연을 설명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인간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자연 관찰과 인간 성찰이 늘 함께 존재한다.
「해바라기」 역시 마찬가지다.
가슴 한복판 사리알로 박히는
누구랄 것 없이
장렬히 몸 받친
낯 뜨거운 대낮의 정사
―「해바라기」 부분
이 시에서 해바라기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사랑하는 존재의 형상이다. 서로를 향해 타오르다가 결국 자신을 모두 내어주는 존재들이다. 마지막의 “장렬히 몸 받친/ 낯 뜨거운 대낮의 정사(「해바라기」 부분)”라는 표현은 해바라기를 인간적 사랑의 상징으로 끌어올린다. 김도향 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생명에 대한 강한 애정이다. 그런데 그 애정은 감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생명이란 상처와 마모를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시선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향하게 된다. 꽃과 나무, 바다와 돌멩이를 통해 생명의 질서를 읽어내던 시인은 이제 그 질서를 자신의 삶 속에서 확인하려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품어야 하는가. 김도향 시의 수행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화두」는 무척 짧은 작품이지만 첫머리를 압축하는 작품이다.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묻길래
오백 년 피고 진 수련일 란가
허니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까톡!
밥 묵고
눈 감았다 떠 보니
수련이 피었다
허네
―「화두」 전문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묻길래/(중략)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이 질문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반복해 온 가장 오래된 물음일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거창한 철학으로 답하지 않는다. “밥 묵고/ 눈 감았다 떠 보니/ 수련이 피었다”는 구절처럼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깨달음도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온다는 것이다. 시인은 존재의 물음을 거창한 철학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를 살아내는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山 첩첩 道 첩첩」은 이 시집의 중심축이다.
앞선 산도
뒷산을
넘을 수 있을까
넘어, 넘어
설악
넘어, 넘어
설산
이미 앞선 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넘어, 넘어
한 생각
넘어, 넘어
한 차원
通 하면
不二에 들겠네
―「山 첩첩 道 첩첩」 전문
위 시에서의 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욕망의 산일 수도 있고, 집착의 산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시인은 산을 넘는 일을 곧 생각을 넘는 일로 확장한다. 결국 수행은 외부 세계를 정복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안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山 첩첩 道 첩첩」은 시인이 평생 붙들고 온 화두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의 작품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배내옷과 수의」일 것이다.
알 수 없이 시작해서
알 수 없는 언덕길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고 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악인지 선인지
분간 없이
무한 질주 실려 가고 있다
―「배내옷과 수의」 부분
이 작품은 시집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 배내옷을 입고 나온다. 그리고 죽을 때는 수의를 입는다. 삶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두 옷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그 둘이 사실은 하나의 원 안에 있다고 말한다. 배내옷은 시작의 옷이고 수의는 끝의 옷이지만, 시작과 끝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인간의 삶은 직선이라기보다 원을 그리듯 이어져 있는 것으로 읽힌다. 태어남이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면, 죽음 또한 또 다른 귀환의 시작일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죽음에 대한 과장된 슬픔이 없다. 대신 생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깊은 성찰이 있다.
청동거울 닦으시는 어머니
빈집 지킴이 허연 머리 민들레
외롭다 외로워 기침한다
아웅다웅 살아가는 봉선화 가족
까르륵 웃음소리 담 넘어 메아리친다
―「울 밑에 선 봉선화」 전문
봉선화는 많은 이들의 유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특별한 꽃이다. 어린 시절 손톱에 꽃물을 들이던 기억, 여름 저녁 마당의 풍경, 어머니의 손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시인은 봉선화를 통해 한 시대의 정서를 불러낸다. 꽃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을 둘러싼 기억이다. 봉선화가 피어 있는 자리에는 늘 사람이 있다.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여름날의 저녁이 있다. 그래서 봉선화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고향의 상징이 된다. 어머니의 체온이 남아 있는 풍경이 된다. 여기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귀향이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향은 지명이 아니다. 어머니가 계신 곳이 고향이고,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 고향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먼 곳으로 떠난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들은 늘 처음 출발했던 자리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각해 보면 『山 첩첩 道 첩첩』이라는 제목은 인간의 생애를 상징한다.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고, 길 하나를 찾으면 또 다른 길이 이어진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가장 소중한 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김도향 시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거창한 사상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연을 바라보며 삶을 배우고, 일상의 사물을 통해 존재를 성찰하며,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되새기고, 어머니를 통해 인간의 본래 자리를 기억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읽을수록 깊어진다. 처음에는 풍경으로 읽히던 시가 어느 순간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오고 남의 기억 같던 장면이 어느새 독자의 기억과 합쳐진다.
결국 이 시집은 산을 이야기하는 시집이 아니다. 길을 이야기하는 시집도 아니다. 그것은 산을 넘고 길을 찾으며 살아온 한 인간의 기록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이야기다. 자연과 생명, 수행과 성찰, 무상과 죽음, 그리고 귀향과 어머니로 이어지는 이 여정은 결국 한 사람의 생애를 닮아있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나면 시집 속에 남는 것은 특정한 시구 하나가 아니다. 오래도록 가슴에 머무는 한 가지 감각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끝없이 산을 넘는 일이며, 그 모든 길 끝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 『山 첩첩 道 첩첩』은 바로 그 돌아감의 의미를 조용하고도 깊게 들려주는 시집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자연과 생명
코스모스__13/ 수수꽃다리__14/ 해바라기__15/ 꿈꾸는 돌멩이__16/ 꽃밭 가에서__17/ 등꽃 신혼__18/ 능소화__19/ 채송화의 수다__20/ 꽃구경__21/ 비밀번호__22/ 밥그릇 싸움__23/ 낡은 수레 옆에서__24/ 사꾸라__26/ 그곳의 단풍나무__28/ 몽돌밭__29/ 명자나무__30/ 쪽빛 바다__31/
제2부 화두와 수행
화두__35/ 낙엽, 쓸다__36/ 글짓기__38/ 山 첩첩 道 첩첩__39/ 두더지 소탕 작전__40/ 시 시__42/ 거미줄__44/ 고드름의 길__46/ 가장무도회__47 혓바닥 목탁__50/ 책탑冊塔 쌓으며__52/ 빗소리__54/ 먹물__55/ 황소와 동자__56/ 팔공산__57/ 마애불__58/
제3부 무상과 죽음
공동묘지__61/ 밤바다__62/ 연기__63/ 도장밥__64/ 초승달__65/ 콩나물 한 봉지__66/ 가락지__67/ 하현달__68/ 배내옷과 수의__69/ 무성영화__70/ 마지막 한 소절__71/ 선문답__72/ 공존 __73/ 수양버들은 물의 길을 알고 있다__74/ 화살__76/ 순장__77/ 지는 해__78/
제4부 어머니와 귀향
운수 대통__81/ 오늘 잡은 소__82/ 엄마의 묘비명__84/ 엄마의 유품__85/ 때 놓친 영산홍__86/ 빵은 눈물이다__87/ 물속의 시간__88/ 계관화鷄冠花__90/ 저 달__91/ 좀개구리밥__92/ 폐사지__93/ 순간의 꽃__94/ 술잔 속을 헤엄쳐 어디로 가는가__96/ 고운 님 오시는 길__98/ 울 밑에 선 봉선화__99/
작품 해설|임동윤
山 첩첩 道 첩첩, 삶이라는 긴 귀향_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