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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한 파멸
민음사 | 부모님 | 202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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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윤의섭의 여덟 번째 시집 『장구한 파멸』이 민음의 시 341번으로 출간되었다. 1994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생의 본질로서의 죽음을 꾸준히 묘파해 온 윤의섭의 시적 세계는 특유의 심미적 언어로 불안과 소멸의 미학을 생성해 왔다. 이번 시집에서 윤의섭은 현대적 삶의 조건이 된 인간성의 파멸을 그려 낸다.

문학이 인간 삶의 총체성을 구현한다는 오랜 믿음은 알고리즘이라는 세속적 신성에 정복된 듯하다.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현대에 이르러, 알고리즘은 인간이 가진 모든 데이터를 분절시키고 탈맥락화하며 인간으로부터 역사성을 박탈한다. 시집의 첫 장이 ‘종말 중’에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의섭이 그리는 종말은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영원한 현재에 머물게 된 인간은 언제나 파멸 중인 것이다.

무엇을 잊었는지도 잊은 ‘슬픈 영원의 시작’을 그리는 이 시집은, 그러나 온전히 파멸의 그물에 갇히지만은 않는다. 윤의섭은 알고리즘이 카운트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공상’을 시적 세계 한 켠에 심어 둠으로써 인간성 회복의 계기를 마련한다.

효율, 성장, 수익 등의 키워드에 침식되지 않는 잔여의 대표물로서의 공상은, 바닥에 누워서도 스스로를 별자리로 만드는 폐타이어의 모습으로, ‘불행해야 행복해진다’는 믿기 힘든 결말에 투신하기 위해 탈출선을 탄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장구한 파멸』은 기계적 신성에 지배된 현시대의 인간이 겪는 실존적 고투에 관한 비망록이자, ‘인간다움’의 보존 방법을 제안하는 희망의 노래이기도 하다.

  출판사 리뷰

기계적 신성의 시대를 비추는 실존의 파열음
안전한 행복 너머 불완전한 불행에의 고요한 사투


윤의섭의 여덟 번째 시집 『장구한 파멸』이 민음의 시 341번으로 출간되었다. 1994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생의 본질로서의 죽음을 꾸준히 묘파해 온 윤의섭의 시적 세계는 특유의 심미적 언어로 불안과 소멸의 미학을 생성해 왔다. 이번 시집에서 윤의섭은 현대적 삶의 조건이 된 인간성의 파멸을 그려 낸다. 문학이 인간 삶의 총체성을 구현한다는 오랜 믿음은 알고리즘이라는 세속적 신성에 정복된 듯하다.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현대에 이르러, 알고리즘은 인간이 가진 모든 데이터를 분절시키고 탈맥락화하며 인간으로부터 역사성을 박탈한다. 시집의 첫 장이 ‘종말 중’에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의섭이 그리는 종말은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영원한 현재에 머물게 된 인간은 언제나 파멸 중인 것이다.
무엇을 잊었는지도 잊은 ‘슬픈 영원의 시작’을 그리는 이 시집은, 그러나 온전히 파멸의 그물에 갇히지만은 않는다. 윤의섭은 알고리즘이 카운트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공상’을 시적 세계 한 켠에 심어 둠으로써 인간성 회복의 계기를 마련한다. 효율, 성장, 수익 등의 키워드에 침식되지 않는 잔여의 대표물로서의 공상은, 바닥에 누워서도 스스로를 별자리로 만드는 폐타이어의 모습으로, ‘불행해야 행복해진다’는 믿기 힘든 결말에 투신하기 위해 탈출선을 탄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장구한 파멸』은 기계적 신성에 지배된 현시대의 인간이 겪는 실존적 고투에 관한 비망록이자, ‘인간다움’의 보존 방법을 제안하는 희망의 노래이기도 하다.

■ 구원 없는 세계를 응시하는 힘

너는 지금까지도 오래 걸렸고 마지막은 멀었다는 것을 잘 아는
앞뒤 잘려 나간 장면
영문을 모르는 표정
너는 너를 구원할 수 없는 구원자

너는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죽을 뿐이다
―「장구한 파멸」에서

기계적 신성에 지배당한 시대에는 숏폼처럼 ‘앞뒤 잘려 나간 장면’만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그 안에서 ‘나’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겨우 존재한다. 인간이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행하는 최후의 저항인 죽음마저 알고리즘 안에서는 더 이상 전복의 힘을 갖지 못한다. 인간의 주체성은 변혁의 능력을 잃은 채로 보존됨으로써 폐쇄된다. 희박해진 주체에게 신화는 ‘겨우 조각만 남은 이야기’일 뿐이고 ‘유통기한이 지난 신’은 휴지통에 버려진다.(「카르만 라인」) 현 시대를 향한 윤의섭의 냉정한 시선은 그러나 냉소주의나 패배주의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쉽사리 끝나지 않을 듯한 ‘장구한 파멸’의 시대에 주체의 유통기한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윤의섭은 기능의 회복이 아닌 노이즈 되기를 제안한다.

■ 측정 불가능한 것이 되기

결말을 말해 줄게 나는 멸망한 지구로 돌아가 내가 항해일지를 조작한 거였지

(……)

산다는 건 긴 복선이다 어떤 떡밥은 끝내 회수되지 못한다
산다는 건 그러니까 긴 예언이다 불행해야 행복해진다는 믿기 힘든 결말도 있다
―「서바이벌」에서

알고리즘은 ‘나’의 선택을 반영하여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듯하지만, 구성 원리로부터 주체를 배제함으로써 사실상 주권 박탈의 기제가 된다. 인간의 욕망을 데이터화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환원하려는 알고리즘의 눈을 피해 ‘멸망한 지구’로 돌아가는 움직임은 알고리즘의 사각지대를 찾아가는 일이다. 알고리즘의 궤도를 벗어난 곳에는 ‘멸망한 지구’뿐 아니라 ‘어머니의 목소리’, ‘늙은 나무에서 물 흐르는 소리’, ‘구름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같은 ‘환청’이 있다.(「음속」) 윤의섭의 시편은 기계적 신성이 포착할 수 없는 잔여를 조금씩 만들어 감으로써 “인간적 주파수”를 보존한다. 이렇듯 『장구한 파멸』은 시라는 형식 속에서 인간의 유통기한을 조금씩 연장하는 조용한 저항의 기록이다.

공상할수록 나는 지워진다
공상은 근본적으로 슬퍼서
나는 기원 없이 지워진다
그러므로 나는 일생을 바쳐 공상하는 중이다

내겐 보름 정도 나타났다 사라지는 계절이 있어
가을에서 가을 사이
바람의 문을 통과하면 거닐게 되는 느린 시계의 화원을
잠시 냄새 맡다 둘러보면 어느덧 지나가 버린 계절
당신이 살고 있는 화원을 당신은 꽃이 없는 화원으로 가꾸어 놓았다
―「누설」에서

이런 정의가 필요했다
멀리 떠나온 사람은 멀리 떠나온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부터는 생존 유지 장치가 있어야 하고
무한한 고독을 매일 삼켜 내야 한다

어떤 신화는 늦게 도착했다
용납에 이르는 주소가 자주 바뀌어서
겨우 조각만 남은 이야기를 살고 있어서
유통기한이 지난 신을 휴지통에 버린다
옥탑방에선 계시인 듯 나팔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아마추어 수준이다
―「카르만 라인」에서

폐기된 아름다움
버려졌거나 마감했거나 마지막에 다다랐거나
모두 덩그러니 쓰러진다
이것은 살아 있을 때의 자세를 고치는 일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된다는데
폐타이어는 지상에 누워 스스로 별자리를 만든다
곱게 누웠다
―「폐타이어의 자세」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의섭
1994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 『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 『묵시록』,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가 있다.

  목차

제1장 종말 중
장구한 파멸 13
헌화 15
암막 16
파타 모르가나 18
카르만 라인 20
오즈 22
곡예 24
음속 26
독채 28
산책과 눈과 소멸에 대한 연구 30
촉진 32
무빙 워크 34
이류異類 36
풍성음 38

제2장 징조의 언덕
예고편 43
파레이돌리아 44
옴브로포비아 46
안데스 콘도르 48
성장 50
루비콘 52
거울 속의 불 54
흐르는 56
만델라 효과 58
발생학 60
구름의 중쇄 61

제3장 기적 또는 적기
누설 65
우리가 초록에 휩싸였을 때 68
저수지를 걷는 사람들 70
기억흔적 72
절망의 끝이라는 다독임 74
물의 언덕 76
우연한 간섭 78
나의 여럿 80
California Dreamin´ 82
폐타이어의 자세 84
서바이벌 85
정신이 사납다는 말 88

제4장 종말의 탄생
리셋 93
여독 94
미혹 96
폐화 98
지음知音 100
망연 102
채석강의 시간 104
비동일성 106
일정 108
휴일 사이 110
병명 112
컷 114
종시終始 116

작품 해설–최다영(문학평론가) 117
기계적 신성의 시대, 영속하는 파멸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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