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AI가 도시를 지배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기술이 공간을 채울수록 우리는 더 비워야 한다”
효율과 쾌적함 너머, 인간에게 필요한 도시의 풍경
일상 곳곳에 스며든 AI가 엄청난 속도로 우리 생활을 바꾸는 것을 넘어, 이제는 도시 설계와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차로 앞에 서면 저절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 신호등, 들어서는 순간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건물, 클릭 몇 번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각종 행정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우리의 하루는 점점 빨라지고, 쾌적해지고, 편리해지고 있다. 그럼 우리는 이런 변화를 그저 반기기만 하면 될까? AI가 도시를 점점 지배하는 동안,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가장 인간적인 도시》는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인 정현재 저자가 이러한 질문과 고민에 건축가의 시선으로 답하는 책이다. 기술이 세상에 스며드는 방식을 공간의 언어로 번역해온 저자에게 지금의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다. 인간에게 도시는 건물과 도로, 나무와 벤치, 신호등과 가로등, 행인과 자동차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다양한 풍경이지만, AI에게는 픽셀과 확률로 이뤄진 데이터 관계망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자는 AI가 점점 빠른 속도로 도시 설계와 운영에 반영되는 일련의 흐름이, 수백 년 동안 도시와 공간을 바라봤던 지배적인 시선의 이동에 가깝다고 밝힌다.
모두가 AI의 최신 성능과 경제적 효과, 흥행할 트렌드와 산업군을 언급할 때, 저자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시선을 다시 확인하자고 권한다. 인간이 끝내 지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AI의 시선이 도시를 채워가지만, 결국 도시에서 살아가는 주체이자 도시의 마지막 안전장치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간은 AI가 어느 정도 관여할 수는 있어도 장악할 수는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독자들은 《가장 인간적인 도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갈 공간의 본질은 무엇인지, 도시에서 기꺼이 비울 수 있는 것과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빠른 교통, 더 쾌적한 건물, 더 편리한 행정 서비스…AI가 지배하는 도시에서, 기꺼이 버릴 것과 끝내 지켜야 할 것AI가 도시에 들어오면서 많은 것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적화’와 ‘효율’이다. 최단 거리, 최소 환승으로 대표되는 대중교통 노선은 이동의 효율을 상징한다. 자율 주행 차와 건물의 자동 조절 기능은 온도, 습도, 음악 크기까지 개인의 취향과 컨디션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최적화의 상징이다.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행정 앱은 시간을 어디까지 절약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기능은 언제나 누군가의 편의를 우선순위에 두지만, 그 우선순위가 보이지 않을 때 진짜 문제가 발생한다. AI는 조용하고 서늘한 곳에서 집중이 잘되는 사람과 약간의 백색소음이 있는 밝은 곳에서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을 동시에 고려할 수 없고, 평균을 고려한 자동 산출이라는 명목으로 거절당한 시민의 권리를 구제해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 특정 공간과 지역의 성격을 규정할수록 우리는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이해할 소중한 기회를 박탈당하지만, 누구도 이를 노골적인 폭력과 차별이라 인지하지 않는다.
이처럼 공간과 도시를 움직이는 AI 뒤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설계자’가 존재하지만, 그 주체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점점 플랫폼처럼 기능하는 AI 도시에서는 인간이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시민으로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화려한 인터페이스뿐,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논리와 데이터의 흐름은 철저히 가려질 수 있기에 스마트함과 효율성을 버리더라도 투명함과 책임 있는 설명을 지켜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도시가 편리해지는 만큼 고민해야 할 윤리와 공감, 인간다움에 관한 고찰 “AI는 우리의 삶을 어디까지 바꿀까.” 모든 사람의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질문 앞에서, 저자는 크게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무엇을 자동화하지 않을 것인가’이다. 계산, 운전, 요리, 서빙, 청소 등 인간이 하던 수많은 일의 상당수는 이미 자동화됐지만 분석적 사고를 비롯해 창의성, 유연성, 리더십, 사회적 영향력 같은 ‘인간적 기술’은 오히려 AI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권한으로 남겨야 한다. 특히 도시의 안전을 책임지고, 인간의 삶을 고려하고, 공간을 통해 어떤 가치를 실현할지 질문하고 결정하는 일만큼은 건축가 스스로 끝까지 품고 가야 한다.
둘째, ‘인간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인가’이다. 사람은 오감을 통해 느끼고, 문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도시와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시스템화하거나 데이터화할 수 있는 일, 규칙적인 반복 작업을 과감히 자동화할수록 인간은 창의성과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셋째, ‘선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이다. AI를 활용하는 모든 의사결정에는 늘 책임의 문제가 그림자처럼 따라붙기에, 중요한 공정마다 인간이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누구나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실패할 수 있어도 사람은 도망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AI와 공존할 수 있다.
넷째, ‘이 결정은 누구의 삶을 먼저 바꾸는가’이다. 파도가 밀려오면 가장 낮은 지대부터 잠기듯, 기술의 영향도 특정한 사람들의 삶에 먼저 도달한다. AI와 자동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AI를 도입하고 자동화를 추진하는 결정이 과연 누구의 일상을 가장 먼저 바꾸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AI 시대에 어떤 선택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일과 삶이 완전히 바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저자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를 끊임없이 자각하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기술이 주입하는 이미지와 정보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자신의 관점을 능동적으로 설계하는 일이다. AI의 시선이 정교해질수록 인간의 눈은 게을러질 위험이 있고, 이 과정에서 소외와 차별, 배척과 비인간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AI로 최적화된 도시는 편리하고 안전하겠지만, 우연성은 사라지고 흥미는 반감되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할 기회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AI의 시선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통찰과 성찰의 눈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독자들은, 저자가 제시하는 묵직한 질문을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AI가 세상을 보는 방법을 우리가 설계했다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법도 우리가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 어릴 적 다니던 성당을 찾았던 어느 날이었다. 약간의 먼지, 여름 햇살이 실내로 스며들면서 만들어내는 온도, 오래된 나무의 냄새와 잔향. 그 공간은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즉각 몸을 안정시켰다.
이런 순간은 데이터로 완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여전히 인간만이 포착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감지하는 미묘한 아름다움과 분위기, 그리고 그 분위기가 쌓이면서 완성해온 시간의 맥락이다.
우리는 미래 도시를 이야기할 때 더 빠른 교통, 더 스마트한 건물, 더 편리한 서비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조금 다르다. ‘AI가 도시를 바꾼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건물 외형의 변화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도시를 이해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뜻일까?
AI에게 도시는 풍경이 아닌 구조다. AI는 도시를 감상하지 않고 하나의 상태로 읽어낸다. 어느 도로가 언제 막히는지, 인구 밀도가 언제 치솟는지, 어떤 조건에서 사고 위험이 높아지는지를 데이터로 파악한다. 도시는 AI에게 끊임없이 갱신하는 확률과 규칙의 집합체다. 건물과 거리의 물리적 형태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도시는 매 순간 다른 상태로 작동한다. AI가 주목하는 도시는 ‘완성된 구조물이 아닌 ‘운영 시스템’으로 재정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