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자신의 정확한 이름도 모르는 아큐는 집도 없이 사당의 한구석에서 살아가는 날품팔이꾼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아큐 또한 그들을 경멸한다. 아큐는 상대가 자기보다 약해 보이면 시비를 거는데, 오히려 자신이 당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아큐는 패배를 제 마음속의 승리로 돌려놓고는 만족해한다.
어느 날, 지나가던 여승을 놀리려고 볼을 꼬집었는데,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나이 서른에 사랑을 느낀 아큐는 짜오 영감네 하녀에게 같이 살자고 요구했다가 얻어맞고 벌금을 물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날품팔이까지 끊긴 아큐는 성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후 성에서 돌아온 아큐는 돈을 벌었다고 으스댄다.
그러나 그것이 도둑들과 어울려 얻은 것임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또다시 좀도둑에 불과한 아큐를 멀리한다. 그러던 차에 아큐가 살던 웨이좡에 혁명의 바람이 불자 아큐는 자기도 혁명당원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혁명은 그를 비껴가고 짜오 영감네 집이 약탈당하자 아큐는 폭도로 오인되어 처형되고야 만다.
출판사 리뷰
오늘을 사는 ‘나’와 ‘우리’의 모습
아큐는 청나라 말기 농촌에 사는 날품팔이 일꾼이라는 특정인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큐는 그 당시의 중국의 민중을 상징하기도 하고 시대를 초월한 불특정 다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에는 무지한 채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며, 강자에게는 끝없이 굽히고 약자 앞에서는 으스대는 비열한 아큐의 모습을 오늘을 사는 내 안에서 발견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큐정전”은 중국 민중의 모습을 잔인할 정도로 숨김없이 드러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민중을 자극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정신이 바로 서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정신적 승리법 - 근거 없는 합리화
아큐는 자신의 참모습을 볼 줄 모른다.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찾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한 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아큐의 승리법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합리화하여 항상 이겼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승리법’이다. 맹목적인 망상이나 턱없는 자기 비하, 치욕과 실패에 대한 필요 이상의 건망증과 자기합리화, 욕을 먹거나 낭패당한 후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행하는 분풀이,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몇 잔의 술로 모두 잊어버리는 단순함 등이 어리석은 아큐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아큐는 마지막 장면의 총살당하는 극한 상황에서조차 놀랄 만큼 무감각한 태도를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정신적 승리법’이 효력을 발휘하면 할수록 주위 사람들의 조롱은 도를 더해 간다. 이 책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했던 청나라 말기의 민중들을 다루었다고 하나 그것이 어디 백여 년 전의 중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어리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아큐의 모습은 부정적 자기만족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조롱과 냉소 그리고 무관심
어리석은 아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늘 하찮은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고 서른이 되도록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아큐를 볼 때의 답답함보다 오히려 더 섬뜩하다. 아큐의 신체적 약점인 머리의 흉터를 놀리고, 성안에 들어갔다 돌아온 아큐가 좋은 물건을 싼값에 팔자 그의 행적을 의심하면서도 그 물건에는 탐을 내던 주민들은 결국 혁명 무리가 저지른 마을의 도난 사건을 그에게 뒤집어씌워 아큐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러나 한 인간을 대하는 비인간적 태도의 절정은 소설의 맨 마지막 아큐의 처형을 그리는 장면에 있다. 그가 살던 ‘웨이좡 사람들은 모두 아큐가 나쁜 놈이라고 욕했다. 그가 총살당한 것이 나쁜 놈이라는 증거라고 했다. …… 성안의 분위기는 더욱 나빴다.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죽음의 순간에도 남들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아큐의 모습은 집단 내에서의 따돌림과 차별의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의 모습과 겹쳐지며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져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루쉰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1881년 저쟝 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투옥과 아버지의 죽음 등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징의 강남수사학당과 광로학당에서 서양의 신문물을 공부했으며,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다. 1902년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 학교에서 의학을 배웠다. 그러다 환등기에서 한 중국인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국민성의 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잡지 《신생》의 창간을 계획하고 《하남》 에 「인간의 역사」 「마라시력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09년 약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항저우 저쟝양급사범 학당의 교사를 시작으로 사오싱, 난징,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신해혁명 직후에는 교육부 관리로 일하기도 했다. 루쉰이 문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18년 5월 《신청년》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이다. 이때 처음으로 ‘루쉰’이라는 필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표작인 「아큐정전」이 수록된 『외침』을 비롯하여 『방황』 『새로 엮은 옛이야기』 등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고, 그의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잡문(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화개집』 『무덤』 등을 펴냈으며, 그 밖에 산문시집 『들풀』과 시평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루쉰은 평생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분노하고 저항했는데,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 잡문이었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으로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루쉰은 1936년 10월 19일 지병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 문학단체 조직, 반대파와의 논쟁,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를 통해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목차
옮긴이의 말
슬픈 자화상
1. 여는 글
2. 아큐의 승리
3. 계속 되는 승리
4. 사랑은 쓰다
5. 이제 어떻게 살지?
6. 아큐의 전성기 그리고 몰락
7. 혁명
8. 혁명은 안 돼!
9. 마지막
편집자 노트
루쉰, "아큐정전"으로 중국 민중을 일깨우다